한 달이 채 남지 않은 2025년, 연평균 환율이 외환위기 수준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다시 쓸 전망이다. 올해 고환율은 앞선 여느 위기 상황과 다른 '내국인 수급 쏠림'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외환 당국이 주체별 점검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내년에도 고환율 국면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저성장 구조개혁'이 외환 시장 측면에서도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고환율, 종전 위기 때와 다르다…문제는 '내국인 수요 쏠림'2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지난달 원·달러 환율 평균은 1460.44원으로 탄핵 정국 속 정치적 불확실성이 부각됐던 지난해 3월(1457.92원)을 넘어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올해 1~11월 평균 환율은 1418.29원까지 올랐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기록한 종전 최고치(1394.97원)를 넘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이달 들어서도 1470원을 전후로 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올해 최종 연평균 환율 수준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원화 가치 하락의 배경엔 개인·기관·국민연금 등 주체를 막론한 달러 수요 확대라는 국내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달러 유출 규모와 속도가 주요국 대비 크고 빠르다는 것이다. 올해 9월 말 자산운용사·보험사·외국환은행·증권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의 외화증권투자 잔액(시가 기준)은 4902억1000만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올해 1~3분기 증가 규모(695억달러)는 과거와 비교해도 뚜렷하게 높은 수준이다.
국제수지 통계에선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를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정부(국민연금)의 1~3분기 해외 주식 투자는 245억1400만달러로 전년 동기 127억8500만달러보다 92% 급증했다. '서학 개미(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의 미국 중심 해외 주식 투자 열기 역시 더 뜨거워졌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환율이 뛴 10월과 11월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순매수 규모는 각각 68억달러, 55억달러로 역대 최대 수준을 나타냈다.
문제는 앞으로 수급 쏠림이 강화되면서 원화 가치가 더 흔들릴 것이란 불안 심리가 작용해, 높은 환율 레벨에도 달러 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앞선 위기 상황을 넘어선 레벨이 아닌) 내국인에 의해 해외 주식투자가 늘어나면서 생기는 한 방향 쏠림 현상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강조한 배경이다.
구조 변화 기저엔 韓 저성장…투자 매력 강화 병행 절실정부가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 안정을 조화시킬 수 있는 '뉴 프레임워크'를 마련하는 가운데 달러를 보유한 수출기업과 서학개미 투자 창구인 증권사를 들여다보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다만 수급 쏠림의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선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문홍철 DB증권 연구원은 "제조업 국가의 수출 중심 경제와 통화 약세가 경제에 선순환으로 작용하기 위한 전제는 기업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자국에 재투자해 국민 경제의 성장으로 연결하는 것"이라며 "국내 투자 여건의 악화, 대미 투자 협상 등 원인은 제각각이지만 기업은 수년 전부터 국내 투자를 줄이고 미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인의 해외투자 증가는 저성장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고환율 국면에서 한국 시장의 투자 매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개혁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신산업 투자 등으로 산업경쟁력이 높아져 고용이 늘어나고 성장률이 높아져야 내국인의 해외 투자가 국내 투자로 전환되고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이 늘어나면서 환율이 안정될 수 있다"며 "조세·노동 등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제도 개혁, 부동산·투자 등과 관련한 일관성 있는 정책 유지 역시 필요하다"고 짚었다.
내년에도 고환율 지속 전망…"달러 약세에도 디커플링"이 같은 이유로 전문가들은 내년 역시 원·달러 환율의 추세적인 상승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위재현 NH선물 이코노미스트는 "수급을 해결할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며 "주식에 과도하게 쏠린 해외투자의 구조적 문제, 대미투자 합의로 인한 수출업체들의 더딘 환전 수요는 모두 환율의 추가 상승을 부추기는 재료"라고 말했다. 이어 "수급으로 인해 움직이는 환율은 고무줄과 같아서, 올라가는 만큼 내려갈 때 반등 압력도 크게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내년 달러는 불확실성 속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이주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내년에도 정책 불확실성이 부각될 여지가 커 이슈에 따른 변동성 확대 국면이 지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상반기엔 미국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완화되며 금리 인하가 가시화, 유동성 환경이 개선되며 달러가 하락 추세를 보이겠지만, 하반기는 중간선거 전후로 또다시 정책 불확실성이 확대될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미·중 갈등 또한 11월 고율 관세 재부과 이슈를 전후로 변동성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위 이코노미스트는 "달러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금리와 성장률이 각각 고용시장 불안, 인공지능(AI) 투자 기대로 방향성을 달리하고 있다"며 "한쪽이 뚜렷한 방향을 보일 때까지 내년에도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이라고 봤다. 내년에는 민간에 더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유동성을 보조적으로 공급하며 달러화 가치가 완만하게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원·달러 환율은 수급 문제로 달러인덱스와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보이며 추세 상승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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