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올라간 게 왜 내 탓?”… 해외투자 규제로 번진 ‘고환율 책임공방’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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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올라간 게 왜 내 탓?”… 해외투자 규제로 번진 ‘고환율 책임공방’ [기자수첩]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넘어 1500원 선을 향하자 정부가 “해외투자 자금 유출이 환율 상승의 원인”이라며 해외주식 양도세 강화 방안을 꺼내 들었다. 해외투자가 늘어 달러 수요가 커졌고, 그 결과 환율이 올랐다는 논리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고환율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반발이 거세다.

단순히 개인 투자자가 해외로 돈을 옮겨서 환율이 오른 게 아니라 한국경제 자체의 성장력이 떨어진 게 근본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환율이 오르면 정부는 가장 손쉬운 ‘해외자금 유출 방지 대책’을 꺼내 든다.

해외투자에 세금을 붙이거나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를 제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본이 해외로 가는 이유는 단순하다”고 말한다.

한국은 성장률 1%대, 미국은 성장률도 높고 금리도 낮춰가고 있다. 투자자라면 어디에 돈을 넣겠는가.

차라리 예금이자 1% 주는 은행보다 4% 주는 은행으로 돈을 옮기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은 집값을 잡겠다며 기준금리를 높은 수준에서 유지했다.

하지만 금리가 높아지면 기업들의 ‘이자 비용’도 함께 뛴다.

기업이 미래를 위해 투자에 돈을 써야 성장하는데 지금은 이자 갚느라 ‘성장할 여력’이 거의 없다.

한국 경제성장률은 1%대이고 기준금리는 2.5%이다.

성장률보다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는 경제가 활력을 잃는다.

자본이 들어오는 나라가 아니라 빠져나가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고환율의 직접적인 원인은 서학개미가 아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상태에 빠졌고 그 결과 투자 매력이 떨어졌으며 돈이 더 잘 불어나는 해외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성장률 격차’가 환율을 움직이는 핵심 변수라는 것이다.

집값 잡겠다고 고금리를 유지하며 경제를 둔화시킨 건 정책 결정자들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해외투자자에게 고환율 책임을 돌리는 건 ‘한강에 화풀이하는 꼴’이다.

고성장 국가와 기업에 투자하는 건 투자자로서 당연한 판단인데 정부는 해외투자를 제어해 환율을 잡겠다는 방식에 집착하고 있다.

환율 방어의 핵심은 규제가 아니라 한국경제가 다시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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