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행정에서 정책 결정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선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담당자의 학문적 배경, 가치관, 세계관에 따라 인식과 해석이 달라지고, 제시되는 정책 대안 또한 상이하다. 문제는 이 같은 차이가 때로는 정부 내부의 권한 충돌로 이어지고, 정책의 합리성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영국의 과학자이자 소설가 찰스 스노는 1959년 ‘두 문화(The Two Cultures)’ 강연에서 이러한 소통 단절을 간파했다. 그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몰이해와 의사소통 부재가 당시 영국 사회의 지적 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스노가 제기한 문제는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특히 과학기술정책 영역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2023년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논의 과정에서 의료계와 행정부 간의 갈등은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지역의료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정원 확대를 추진했지만, 의료계는 인력 수급 방식과 질 관리 문제를 이유로 강하게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등 관련 부처 간의 견해차도 명확히 드러났다. 이견의 상당 부분은 단순한 이해관계를 넘어 과학적 합리성과 사회적 타당성 그리고 행정 현실 간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이공계 출신 전문가와 사회과학적 훈련을 받은 정책 담당자 간의 시각 차이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인사혁신처의 ‘2025 공공부문 균형인사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중앙부처 4급 이상 공무원 중 이공계 출신 비율은 37% 정도이며, 대부분은 여전히 행정학, 법학 등 인문사회계열 출신이다. 반면, 과학기술 정책은 점점 더 고도화된 기술 이해와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과 정책 간의 해석 차이가 벌어질수록 현장의 실행력은 약화하고 국민 신뢰는 흔들린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인공지능(AI) 강국 전략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날 수 있다. AI는 그 자체로 기술 집약적인 영역이지만,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의 윤리성, 노동시장 변화 등 다층적 사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예컨대, 2024년 2월에 정부가 발표한 ‘AI 윤리영향평가 프레임워크’는 기술 발전과 인권 보장을 동시에 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실제 정책 실행 과정에서 기술 전문가와 공무원 간의 해석 차이로 인한 혼선 발생도 무시할 수 없다. 기술 중심적 이공계 전문가의 규제 완화와 사회과학 기반 공무원들의 규범적 성찰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과학기술정책은 단기 성과 중심의 홍보 전략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두 문화를 넘어서야 할 때다. 인문학적 감수성과 과학 기술적 전문성을 아우르는 인재의 양성이 절실하다. 단순한 부처 간 협의나 외부 자문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술과 윤리, 데이터와 가치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융합적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공무원 양성 체계 또한 개방성과 다양성을 갖춘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특히 융합형 교육 훈련 과정 도입, 정책 실무에서의 다학제 협업 구조 정착 등이 구체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다전공 또는 이중 전공 인재의 적극적인 실무 활용도 의미 있는 실험이 될 수 있다.
AI 시대의 정부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간과 기술이 공존하는 정책, 과학과 인문이 결합된 통찰이 미래 행정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다. 한국 행정에서 스노의 경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