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미래] 약자의 목소리로 기후해법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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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미래] 약자의 목소리로 기후해법을 묻다
이상기후 충격 취약층 먼저 닿아 정작 피해자 목소리는 반영 안 돼 기후위기 보도 ‘사람 중심’ 관점 지역·약자 현장부터 들여다봐야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야기를 꺼내겠다. 개인적으로 추운 겨울이 오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기자를 하지 못하면 미국 알래스카에서 붕어빵이나 팔자며 웃던 친구. 나와 동갑이던 김애린. 약 10년 전, 대학생 해외봉사 활동에서 처음 만난 애린이. 그 누구보다 밝고 유쾌했으며 세상사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였다.

애린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KBS 기자가 됐다. 수습기자 교육을 마친 후 곧바로 전남과 광주 일대를 누비며 TV 화면에 등장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 친구가 가지던 특유의 따듯한 시선은 뉴스에도 그대로 녹아들었다. 애린이는 장애인, 취약계층,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들의 인식과 정책 변화를 끌어내는 보도를 꾸준히 해온 기자였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그가 전한 보도 중 ‘달팽이 붕어빵’은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발달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주민협의체가 지원한 작은 붕어빵 가게가 민원으로 이틀 만에 문을 닫은 사연을 토대로 들어간 취재였다. 애린이는 이 이야기를 단순한 사연으로 보지 않았다. 도시의 질서와 생존이 부딪힐 때 가장 먼저 무엇이 사라지는지를 보여주며, 노점 허가제를 비롯한 공존의 틀을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는 질문을 던졌다. 1분40초짜리 방송 리포트로는 충분하지 않았기에 별도의 디지털 기사도 내고 후속보도까지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도는 애린이의 마지막 보도가 됐다. 2024년 12월29일, 179명이 숨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 애린이네 부부는 돌아오지 못했다.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사고 원인 등 어떤 진실도 밝혀지지 않았다. 비현실적인 죽음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해 생기는 이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린이와 나눈 대화들이 소중하게 남는다. 힘들다고 하소연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 동료 욕을 서로 주고받으며 버티자고 웃던 대화. 그 속에서 우리는 기후·환경 보도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고 의견을 나누던 순간도 있었다.

어느 날 애린이가 이렇게 물었다. “기후위기를 공부해 보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기사들을 읽어보는 것으로 시작해도 될까? 입문용 서적은 무엇을 보면 좋을지 모르겠어.” 그때는 나도 잘 모른다는 핑계로 충분한 답을 해주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필독 독서 목록을 주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혼자서 막막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어.

예를 들어 국제 저널리스트 네트워크 ‘커버링 클라이밋 나우(CCN)’에서는 2000명이 넘는 전 세계 언론인이 기후보도 팁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기후과학을 둘러싼 전문가 강의부터 뉴스룸을 위한 좋은 교육 프로그램 사례도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입문자에게도 문턱이 높지 않을뿐더러, 무료 교육도 많다.

특히, 정치·경제·건강·문화 등 언론인 개인의 관심사에서 기후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지 실제 기사와 교육 자료를 보여준다. “기후는 특정 출입처 기자만의 주제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애린이가 취재하던 ‘달팽이 붕어빵’ 같은 이야기는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극한 한파·폭염 등 이상기후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흔들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영향은 이미 가장 낮은 곳부터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CCN 역시 “기후문제를 완벽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과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모두 포함돼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기후대응 해법을 말하는 자리에서 정작 당사자의 목소리는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를 제대로 보도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작은 삶과 복지의 균열을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애린이가 살아 있었다면, 기후위기 시대의 복지와 불평등 문제를 누구보다 깊고 따듯하게 취재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애린아, 네가 남긴 시선과 문장 그리고 질문들은 지금도 다른 언론인들의 손끝에서 이어지고 있어. 사람을 바라보는 법, 소리를 잃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법, 지역과 일상을 귀하게 여기는 법. 그 모든 빛이 우리 곁에 계속 있을 거야.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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