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줄만 알았는데…” 손주 돌보는 할머니, 노쇠 위험 22% 낮았다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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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줄만 알았는데…” 손주 돌보는 할머니, 노쇠 위험 22% 낮았다 [건강+]
남성도 노쇠 위험 18% 낮아졌지만 통계적 유의성은 제한적
손주 돌봄을 맡는 여성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노쇠 발생 위험이 22% 낮았다. 게티이미지뱅크
대한민국 많은 할머니들의 하루가 손주 등·하원과 식사 준비, 놀이, 재우기까지 ‘손주 돌봄’으로 채워지는 가운데, 기저귀 갈기부터 이유식 먹이기 같은 돌봄 노동이 오히려 노년기 건강을 지키는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급속한 고령화 속에서 손주 양육에 참여하는 노인이 늘어나고 있는 한국에서는 특히 주목되는 대목이다.

8일 학계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Geriatrics and Gerontology International’ 최신호에 게재된 것으로, 연세의대 예방의학과·가천대길병원·동국대 통계학과 공동 연구팀이 한국고령화연구패널(KLoSA)에 참여한 노인 8744명을 2006년부터 최대 14년간 추적 관찰해 수행했다.

연구팀은 노인들을 손주 돌봄 그룹(431명, 평균 62.7세)과 비돌봄 그룹(8031명, 평균 59.5세)으로 나눠 건강 관련 변수를 모두 보정한 뒤 노쇠 발생 위험을 비교했다. 돌봄 그룹은 75.4%가 여성 노인이었다.

그 결과 손주를 돌보는 여성 노인의 노쇠 발생 위험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22% 낮았다. 남성도 18% 낮았지만 통계적 유의성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연구팀은 손주 돌봄이 단순 가사노동을 넘어 ‘의미 있는 역할 부여’와 ‘일상적 신체 활동 증가’라는 두 축을 통해 노년기 활력을 유지하게 하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손주를 챙기기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통원하고 함께 놀며 자연스럽게 걷고 움직이는 시간이 늘어나 근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노쇠의 핵심 요소로 꼽히는 사회적 고립이 돌봄 제공 여성에서 유의하게 낮게 나타난 점이 눈에 띈다. 손주와 상호작용하고 자녀 세대와 꾸준히 접촉하는 생활 패턴이 정서적 안정감을 높이고, 이는 다시 신체 기능 저하를 늦추는 완충작용으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연구팀은 “한국 특유의 가정 구조에서는 손주 돌봄이 자연스럽게 사회활동의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팀은 모든 돌봄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돌봄 시간이 지나치게 길거나, 원치 않는 돌봄을 의무감으로 맡는 경우 오히려 스트레스와 피로가 누적돼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세의대 박유진 교수는 “한국에서 손주 돌봄은 이제 단순한 가족 보조 역할을 넘어 노년 건강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며 “정서적 보람과 신체 활동이 적절하게 결합될 때 손주 돌봄은 노쇠를 늦추는 새로운 건강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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