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조선 강점, 1868~1910/ 힐러리 콘로이/ 김범 옮김/ 테오리아/ 3만3000원
일본 총리를 역임한 오쿠보 도시미치와 이토 히로부미 등 “실용적이고 조심스럽게 진보적이지만, 무엇보다도 일본의 안보와 국익에 관심이 많았으며, 국제정치의 체스 게임에서 사려 깊고 신중한 선수”인 현실주의자들. 언론인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해 “넓은 시야와 진보적인 시각으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전 세계 사람들이 상호 인정과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관심과 동정심과 희망을 갖고 있”는 자유주의자들. 사무라이 사이고 다카모리와 합병론자 우치다 료헤이 등 무너지는 전통에 분개하면서 “위기 상황에서는 방어선을 최대한 확장하려고 노력하며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인 반동주의자들.
일본 근대 현실주의 정치세력이 자유주의자 및 반동주의자와 경쟁 및 갈등하면서 어떻게 조선 강점으로 입장을 선회하게 됐는지를 추적한 책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인물 왼쪽부터 현실주의자인 오쿠보 도시미치와 이토 히로부미, 반동주의자 사이고 다카모리, 자유주의자 후쿠자와 유키치 . 세계일보 자료사진 근현대 일본의 주요 정치세력을 이처럼 현실주의자와 자유주의자, 반동주의자 세 유형으로 구분한 뒤, 현실주의 정치세력이 다른 세력들과 경쟁 및 갈등하면서 어떻게 조선 강점으로 입장을 선회하게 됐는지를 추적한 동아시아 근대사 연구의 문제작 ‘일본의 조선 강점, 1868~1910’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40년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동아시아사를 연구한 역사학자인 저자 힐러리 콘로이(1919∼2015)가 1950년대 후반 저술한 책으로, 1868년 일본 메이지유신에서 시작해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하기까지의 역사를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 이론에 기반해 분석했다.
힐러리 콘로이/김범 옮김/테오리아/3만3000원 책에 따르면, 오쿠보와 이토 등 현실주의자들은 1873년 정한론을 둘러싼 논쟁과 대결에서 승리한 뒤 지속적으로 국가 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들은 당초에는 조선을 일본의 부분적 통제와 지시를 받는 별도의 정치적 실체로 유지하겠다고 구상했지만, 자유주의자들과 반동주의자들과의 경쟁과 갈등 속에서 서서히 한반도를 완전히 일본 통치 아래 두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즉, 1880~90년대는 주로 후쿠자와를 비롯한 자유주의자들이 1884년 갑신정변을 후원하고 지지하며 현실주의자를 뒤흔들었고, 1894년 청일전쟁과 이듬해 민비 시해, 1904년 러일전쟁과 이듬해 을사늑약 전후에는 반동주의자들이 준동하면서 현실주의자를 좌절시켰다. 왜 현실주의자들은 조선 강점으로 선회하게 된 것일까. 저자는 현실주의자의 기준이 국익이었기에 ‘미안한 것’보다는 ‘안전한 것이 낫다’는 가정에 따라 행동하면서 선회는 불가피했다고 분석한다. “조선 병합을 향한 일본의 과정은 하나의 흐름, 하나의 명확한 국가적 접근이 아니라 숲에 있는 세 개의 샘처럼 이념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세 개의 물줄기가 점차 합쳐져 조선을 집어삼킨 홍수가 된 것이었다. ”
저자는 현실주의자 이토가 안중근에게 암살당하기 전 조선 병합에 동의했을 것이라며, 그 배경에 대해선 “충격적인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통감부의 통치가 강화되자 조선인들은 저항하며 폭동을 일으켰고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이토를 괴롭혔으며, 그는 타협적 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됐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결과적으로 일본 근대화 주도 세력은 조선 강점을 추진하기 전에 충분한 자기 성찰을 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 결과 일본은 조선을 장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두 나라 관계에 결정적인 손상을 입혔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일본과 미국이 국익에 기반한 정책을 펼치기보다 꾸준한 이상주의를 적용했다면 조선과 자신들에게 훨씬 더 큰 도움이 됐을 수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국무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일본은 조선을 안전하게 확보해야 한다는 긴급함을 덜 느꼈을 것이다. ”
다소 허망한 결론이자, 절반밖에 보여주지 못한 진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책은 출간 당시부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즉, 일본의 조선 강점을 일본 내부의 정치적 이념적 갈등을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결과적으로 일본의 입장을 과도하게 많이, 너무 우호적으로 서술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저자가 일본 자료를 중심으로 조선 정책이 수립되는 과정을 연구한 반면,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측 자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아울러 역사적 사실에 대한 중대한 오해나 누락도 엿보인다. 예를 들면, 저자는 “1909~1910년 조선 병합에 특별한 강요가 없었다”거나 “조선은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주먹 한번 날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논의를 전개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강제병합 과정을 들여다보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강제병합 당시 일본은 군대와 통감부를 동원하고 포섭과 공작을 광범위하게 펼쳤고, 반대로 조선인들은 동학과 의병, 테러, 자살 등의 방법으로 일본에 맞서고 저항했다는 건 이미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