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의 역사가 아닌 서민의 삶에 초점을 맞춰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 온 도시문헌학자이자 도시 답사가의 신간이다. ‘서울 선언’, ‘갈등 도시’, ‘대서울의 길’ 등 ‘한국 도시 아카이브’ 시리즈를 펴낸 저자가 선거 때마다 쏟아지는 개발 공약과 단기적 시장 소음 속에서 실제로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신호를 가려내는 법을 제시한다.
‘행정수도 세종은 완성될 수 있을까’, ‘3기 신도시와 135만 호 건설’, ‘(동남권) 풍산 공장 이전 논란이 보여주는 지역 내 갈등 구도’, ‘잼버리 이후의 새만금’, ‘광주의 복합 쇼핑몰과 재건축 이슈’ 등 도발적인 질문에서 출발해 독자의 관심을 끌어당긴다.
김시덕/열린책들/2만5000원 전국을 발로 답사한 저자는 국내 도시 지형도가 지금 유례없는 속도로 재편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선거 시기에 난무했던 대규모 교통망 공약, 서울 편입 논의, 신공항 건설 계획 등이 선거 이후 어떤 방식으로 수정되고 지연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 GTX 예정 노선의 건설 일정 변화, 가덕도 신공항 공기(工期) 문제, 각 지자체 간 교통 정책 충돌 사례 등은 ‘선거가 곧 도시 정책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대표적 장면으로 제시된다. 도시의 미래를 읽으려면 표를 의식한 공약이 아니라, 재정·인구·환경 같은 현실의 제약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 역시 도시 구도 재편에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 북·중·러의 결속,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동남권 방위산업 벨트를 키우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권위주의 대 비권위주의의 신냉전 구도가 강화되는 만큼 한국 동남권 방위 벨트의 산업체들은 길게 주목할 만하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지정학 리스크 확대 속에서 부산·울산·경남 지역이 장기적으로 수혜를 받을 가능성과, 동시에 가덕도 신공항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정치·행정·기술적 난관을 함께 짚으며 이 지역의 명암을 균형 있게 조망한다.
대서울권에서는 이른바 ‘확장 강남’이 여전히 강력한 성장 축으로 기능하는 이유와, 반대로 경기 북부와 서해안 지역의 개발 기대가 각종 제약에 부딪히는 구조를 설명한다. 경기 김포·고양의 서울 편입 논란, GTX-D 노선 반영 문제, 2호선 연장 갈등, 지자체 간 이해관계 충돌 등 최근 이슈들은 단순한 뉴스가 아니라 수도권 도시 구조의 속살을 드러내는 징후로 읽힌다.
세종·충청권을 비롯한 중부권에서는 행정수도 논쟁, KTX 세종역 추진 가능성,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문제가 실제 정책과 지역 정치 사이에서 어떻게 변주돼 왔는지 차근차근 짚어 나간다.
대구·구미·김천, 중부 내륙, 동해안, 전북 서부, 전남 서부, 제주 소권 등에서는 각 지역의 산업 구조 변화, 인구 이동, 교통망 구축 상황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며 ‘어디가 장기 경쟁력을 갖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모색한다. 저자는 앞으로도 매년 이 시리즈를 업데이트해 한국 도시 지형도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기록할 계획이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