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분노의 시대, 종교계가 던진 상식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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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분노의 시대, 종교계가 던진 상식의 언어  
2026년 병오년을 앞두고 종교계가 공통의 메시지를 내놓았다. 분노와 갈등을 넘어 자비와 화목으로 가자는 호소다. 이 말이 새삼스럽게 들린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상식의 선을 오래 벗어나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부족한 것은 해법이 아니라 말의 절제와 태도의 균형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모든 혼란의 시작은 밖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고 했다. 개인 윤리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공적 영역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갈등의 상당수는 언어의 과열에서 시작되는 사례가 많다.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몰아붙이는 말, 문제를 풀기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이 갈등을 증폭시켰다. 분노를 내려놓으라는 주문은 회피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해외 사례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종 갈등의 끝자락에서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해 보복보다 고백과 경청을 선택했다. 완전한 합의는 아니었지만, 분노의 연쇄를 끊는 최소한의 규칙을 마련했다. “용서는 과거를 바꾸지 못하지만, 미래를 연다”는 넬슨 만델라의 말은 감상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었다.
 
천태종 총무원장 덕수스님이 강조한 ‘이타심’ 역시 이상론이 아니다. 독일 정치의 핵심은 타협과 합의다. 연정과 사회적 대타협을 가능하게 한 힘은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문화였다. “완벽한 합의보다 지속 가능한 합의가 낫다”는 독일식 상식은 갈등 관리의 실천적 기준을 제공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의 메시지는 사랑과 평화를 ‘실천’의 언어로 옮긴다. 성숙한 민주주의에 대한 감사와 정부에 대한 기도는 종교의 역할을 정확히 짚는다. 종교는 정치의 대체물이 아니라 정치가 지켜야 할 기준을 비추는 거울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눈에는 눈을 요구하면 결국 모두가 눈먼 사회가 된다”고 경고했다.
 
개신교의 메시지도 다르지 않다. 한국교회총연합은 “비난보다 격려를, 정죄보다 사랑을” 택하자고 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대립을 넘어 평화와 화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신앙의 선언이 아니라 사회적 요청이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가 말한 “벽이 아니라 다리”라는 표현은 지금의 현실을 정확히 겨냥한다.
 
기본과 원칙, 상식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명확하다. 갈등은 불가피하지만 갈등을 관리하는 방식은 선택의 문제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순간 상식은 사라지고, 공동체가 치러야 할 비용은 커진다. 종교계의 신년메시지는 화해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더 나쁜 선택을 반복하지 말자는 최소한의 경고다.
 
병오년의 출발선에서 우리 사회가 새겨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더 센 말이 필요한가, 아니면 더 책임 있는 말이 필요한가. 분노의 언어는 쉽고, 상식의 언어는 어렵다. 그러나 공동체를 지탱해 온 것은 언제나 후자였다. 지금이 바로 그 상식을 다시 불러와야 할 시간이다. 그래픽노트북LM[그래픽=노트북LM]
아주경제=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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