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이 대만의 미국 무기 구매를 빌미로 사실상 '대만 침공 리허설' 수준인 대만 포위 훈련을 이틀째 이어갔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훈련의 심각성을 평가절하하며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미중 관세 전쟁이 여전히 '휴전'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 문제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인민해방군 동부전구는 30일 위챗 공식 계정을 통해 동부전구 구축함·호위함과 전폭기 등 병력이 대만 섬 남북 양단 해역에서 검증·식별과 경고·퇴거, 모의 타격, 해상 돌격, 방공·대잠수함 등 훈련에 나섰다며 "해·공군 협동과 일체화된 봉쇄 능력을 검증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30일 오전 9시(현지시간) 동부전구 육군 부대가 대만섬 북부 관련 해역을 대상으로 원거리 화력 실탄 사격을 했으며, 예상한 성과를 달성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동부전구는 전날부터 육군·해군·공군·로켓군 등 병력을 조직해 대만을 포위하는 '정의의 사명-2025' 훈련에 돌입했다.
이번 대만 포위 훈련은 최근 미국이 대만에 역대 최대 수준인 111억달러(약 15조9000억원) 규모의 무기를 판매한 것을 겨냥했다는 해석이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관련 질문에 "외부 세력이 대만을 무장시키면 대만해협을 전쟁 위기로 밀어 넣을 뿐"이라면서 "군사훈련은 대만 독립 분열 세력을 겨냥한 엄중한 징벌"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중국은 대만과 미국 등 '외부 세력'의 교류를 문제 삼아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시작해 이번까지 대만 포위 훈련을 7차례 진행해 왔다.
문제는 중국이 이처럼 미국의 대(對)대만 무기 판매를 이유로 대만을 압박하고 있음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관련 질문에 "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훌륭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무엇도 날 걱정하게 하지 않는다. 중국은 그 지역에서 해상 훈련을 20년간 해왔다"며 훈련의 심각성을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 "그(시진핑)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며 난 그가 그걸(대만 침공)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만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방관적인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을 이유로 중국이 일본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섰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비난하거나, 동맹국인 일본에 힘을 실어주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무역 분쟁 중인 중국과의 관계 관리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중간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생활 물가 상승 등으로 상황이 불리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관세 협상을 성과로 내세우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교도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념적 관점에서 중국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대만 문제 등 양국 관계에 있어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 내에서 생활 물가 상승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 등을 비춰볼 때 트럼프 행정부는 내년까지 중국·일본에 대한 외교 정책에서 '경제 우선'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 문제에 대해 여지를 보이자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 발언을 빌미로 일본을 압박한 데 이어 이번엔 대만 포위 훈련에 나서며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양상이다. 반면 중국은 미국에 대해서는 경제 협력을 강조하며 유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전날 중요 국제 문제에 관한 자국의 입장을 설명하는 종소리(鐘聲) 논평에서 할리우드 영화 '주토피아 2'의 중국 내 흥행수입이 미국 현지를 뛰어넘었다면서 "미중 양국은 안정적인 협력을 통해 공동 번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주경제=이지원 기자 jeewonlee@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