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중에는 소소한 이야기를 다뤄 마치 실제로 있을 법한 ‘현실의 거울’과 같은 드라마가 있는 반면, 과장되거나 허구를 통해 권선징악(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함) 같은 내용을 통해 ‘이상향’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있다.
전자는 가족의 일상이나 남녀 간 사랑, 직장 내 생활 등을 주로 다룬다. 최근 종영한 JTBC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이에 해당한다. 이 드라마는 대기업 부장에 서울 자가 아파트, 단란한 가족까지 갖춘 주인공 김낙수(류승룡)가 승진에 밀리고 부동산 사기까지 당하는 온갖 고초를 겪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중년 가장이자 평범한 직장인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내 50대 중년 남성은 물론이고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공감까지 끌어냈다. 다만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여서 안 그래도 암울한 현실인데 TV에서까지 우울한 모습을 봐야 하느냐는 불만도 다소 있었다.
SBS ‘모범택시3’. 이는 TV에서만큼은 밝고 행복하고 희망적인 것들을 보고 싶다는 요구로, 이런 요구를 노린 것인지 공교롭게도 방송가에서는 최근 희망적인 내용을 담은 드라마 다수가 시청자를 찾고 있다. 시청자들은 해당 드라마를 보면서 현실에서 느끼기 힘든 행복감이나 대리만족을 얻고 있다. 특히 해당 드라마들은 힘든 현실이지만 착하게 꿋꿋이 살다 보면 언젠가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나를 괴롭힌 사람(악)은 언젠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다. 또한 해당 내용을 담기 위해 대부분의 드라마가 장르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대표적인 드라마가 최근 시청률 14%(닐슨코리아 기준)를 돌파하면서 세 번의 시즌을 겪었지만, 여전히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SBS ‘모범택시3’다. ‘모범택시’ 시리즈는 2021년 4월 처음 방송한 드라마로, 최고 시청률 16.0%(시즌1)와 21.0%(시즌2)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프랜차이즈 시리즈다. 택시회사 무지개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이제훈)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해주는 내용이다. 동명 웹툰이 원작으로, 시즌마다 거대 악을 등장시켜 호쾌한 액션과 재치있는 방법으로 응징하고 있다.
‘모범택시3’가 택시기사와 운수사의 복수 대행극이라면, tvN ‘프로보노’와 MBC ‘판사 이한영’은 판사 활약극이다. 두 드라마 모두 전직 판사(현직 변호사) 또는 현직 판사가 주인공으로, 잘잘못을 판단해 판결을 내린다는 점에서 ‘권선징악’을 대표하는 직업(판사)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tvN ‘프로보노’. 지난 6일부터 방송 중인 ‘프로보노’는 출세에 목맨 속물 판사 강다윗(정경호)이 초대형 로펌 공익팀에 소속되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무료로 사건을 해결하는 드라마다. 제목 ‘프로보노’는 라틴 문구인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의 약어로 변호사가 소외 계층을 위해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뜻한다. 드라마는 ‘모범택시3’처럼 완전 허구라고 하기는 힘들다. ‘프로보노’에서 강다윗처럼 활약(?)은 무리일지라도 이미 영화 ‘변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활약한 실제 변호사의 이야기가 영화나 드라마로 수차례 제작된 바 있기 때문이다.
MBC ‘판사 이한영’. 반면 ‘판사 이한영’은 조금 다르다. 내년 1월2일에 첫 방송 예정인 해당 드라마는 사고를 당해 10년 전인 2025년으로 돌아오게 된 판사 이한영(지성)이 인생 2회차를 맞아 과감한 행동으로 악인들을 벌하는 내용이다.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는 것부터가 허구다. 여기에 판사가 직접 뛰어다니면서 악을 응징한다는 내용부터가 현실성이 없다. 그럼에도 해당 드라마가 방송 전부터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데에는 이미 탄탄한 이야기 전개가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판사 이한영’은 원작 웹소설 1075만 뷰, 웹툰 1억191만 뷰, 합산 1억1000만 뷰 이상을 기록한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조회수가 입증하듯이 해당 작품(원작)은 통쾌한 이야기 전개를 비롯해 화려하면서 시원한 주인공의 활약 등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최근 이러한 드라마가 방송가의 선택을 받고, 시청자의 주목을 얻는 데에는 ‘각박한 현실’이라는 이유가 있다. 방송가 한 관계자는 “최근 너무 각박한 환경이어서 현실에서 벗어나 행복한 환경을 꿈꾸고 싶을 때가 있고, 이를 드라마가 반영하는 것”이라며 “특히 법을 악용하거나 법을 무시하면서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응징하는 내용을 드라마가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