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성탄절을 전후해 이름을 남기지 않은 기부자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전북 곳곳을 찾아왔다. 수십 년간 이어진 익명의 나눔은 차가운 연말을 따뜻하게 밝히며 지역 사회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30일 전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43분쯤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주시 노송동 직원들이 천사가 놓고 간 성금을 개봉하고 있다. 전주시 제공 중년 남성으로 추정되는 발신자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소나무 밑에 박스 하나를 두었으니 좋은 곳에 써달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주민센터 직원은 매년 이맘때 찾아오는 ‘얼굴 없는 천사’임을 직감하고 그가 알려준 장소로 향했다. 주민센터에서 260여m 떨어진 현장에는 A4 용지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상자 안에는 5만원권 현금다발과 빨간 돼지저금통 그리고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2026년에는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합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짧지만 따뜻한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성금을 세어보니 총 9004만6000원이었다.
이름도, 직업도 알 수 없는 이 기부자는 2000년 4월, 초등학생 자녀로 보이는 아이를 통해 58만4000원이 담긴 돼지저금통을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26년째 27차례에 걸쳐 나눔을 이어오고 있다.
누적 성금은 총 11억3488만2520원이나 된다. 전주시는 그동안 이 성금으로 소년·소녀 가장 등 지역 인재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생활이 어려운 7000여세대에 현금과 연탄, 쌀 등을 지원해 왔다.
인근 완주군에서도 익명의 나눔이 이어졌다. 성탄절인 지난 25일 아침, 완주군 용진읍 행정복지센터 출입구에는 10㎏들이 쌀 60포대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출근하던 직원이 발견한 쌀더미 위에는 ‘가장 외지고 어두운 곳에서 고단한 시간을 보내는 이웃들에게 사랑의 온기를 전하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손 편지가 놓여 있었다.
용진읍은 매년 같은 시기, 같은 방식으로 찾아오는 ‘얼굴 없는 쌀 기부 천사’의 선행으로 보고 있다. 이 기부는 2008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17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전달된 쌀은 10㎏들이 1020포대, 모두 1만200㎏에 이른다.
전주·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