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독일 완성차 업체 BMW의 차량용 반도체 공급 파트너 자리를 꿰찼다. 이재용(사진) 삼성전자 회장이 일찌감치 전장(자동차 전자·전기 장비)을 그룹 핵심 성장동력으로 점찍고 역량을 강화해 온 선구안이 성과로 나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반도체)부문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오토 V720’을 BMW의 ‘뉴 iX3’에 탑재했다. 뉴 iX3는 BMW의 차세대 전동화 플랫폼인 ‘노이에 클라쎄(Neue Klasse)’가 적용된 첫 모델로, 내년 하반기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삼성은 이번 모델을 시작으로 향후 출시될 BMW의 차세대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에도 5나노 최첨단 공정 기반의 ‘엑시노스 오토 V920’ 등을 순차적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이번 공급은 단순한 부품 판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BMW와 같은 프리미엄 완성차 업체는 부품 선정 기준이 매우 엄격한데, 엑시노스 오토가 기능안전성(FUSA) 등 까다로운 품질 검증을 통과해서다. 앞서 아우디, 폴크스바겐에 이어 BMW까지 고객사로 확보하면서 삼성전자는 진입장벽이 높은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확실한 기술 경쟁력을 입증하게 됐다.
삼성 칩은 차량 내에서 고화질 멀티미디어 재생과 게임 구동, 실시간 운행 정보 제공 등 ‘슈퍼 두뇌’ 역할을 수행하며 BMW가 지향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전환의 핵심축을 담당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성과를 이재용 회장의 글로벌 광폭 행보와 그룹 차원의 전장 육성 전략이 빚어낸 결실로 해석하고 있다. 삼성과 BMW의 인연은 2009년 전기차 공동 개발 프로젝트로 시작돼 16년간 이어져 왔다. 초기에는 삼성SDI가 BMW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것이 주축이었지만, 이 회장이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 등 글로벌 자동차업계 리더들과 지속해서 교류하며 신뢰를 쌓은 결과 협력 범위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으로 대폭 확장됐다는 분석이다.
이 회장은 2016년 80억달러(약 9조2000원)를 투자해 카오디오·전장 기업인 미국 하만을 인수하는 ‘빅딜’을 시작으로 전장 사업을 키워 왔다. 최근엔 하만을 통해 글로벌 전장 업체인 독일 ‘ZF 프리드리히스하펜’의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사업을 15억유로(약 2조6000억원)에 인수하며 공격적인 투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 계열사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전장 부품 경쟁력을 키우면서 그룹 전체의 시너지가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이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