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인터뷰] 박정민, 뜻깊은 ‘라이프 오브 파이’ 무대…“고단하고 무섭지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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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인터뷰] 박정민, 뜻깊은 ‘라이프 오브 파이’ 무대…“고단하고 무섭지만 좋아요”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약하던 배우 박정민 무대로 돌아왔다. 8년 만에 무대에 선 박정민은 체력적인 고단함을 털어놓으면서도 “무대 바로 앞에 관객이 존재하는 게 무섭지만 좋다”고 작품에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 제공=샘컴퍼니
끊임없이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활약으로 최근 몇 년간 가장 바쁜 배우이자 흥행보증수표로 떠오른 박정민이 8년 만에 무대에 섰다. 업계 러브콜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무대 연기는 또 한 번의 도전이었지만 그의 저력은 여전했다. 스크린을 넘어 무대로 확장된 그의 연기 세계는 왜 박정민이 작품마다 캐스팅 1순위가 되는지 명쾌한 답을 제시했다.

지난 2일 한국 초연 막을 연 라이브 온 스테이지 ‘라이프 오브 파이’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남겨진 파이와 벵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의 227 일간의 대서사시를 담았다. 맨부커상 수상 원작인 얀 마텔의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를 이안 감독의 영화에 이어 무대화한 작품이다. 올리비에상 5개 부문, 토니상 3개 부문을 수상하며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예술적, 상업적 성취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박정민이 주인공 파이 역으로 2017년 이후 8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배우 활동 휴식기를 가진 뒤 첫 복귀작으로 영화나 시리즈물이 아닌 무대 연기를 택했다. 매체가 아닌 무대 복귀는 배우로서 사뭇 부담되는 행보였지만 그동안 쌓은 연기 내공은 여전했다. 배우가 가진 역량은 물론 육체적, 정신적인 에너지를 쏟아내야만 하는 역할임에도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오가는 서사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중심을 잡았다.

사진 제공=에스앤코

한창 공연을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는 와중에 인터뷰를 진행한 박정민은 “그동안 간간이 무대 제의가 오긴 했지만 겁이 났었고 제가 잘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그동안 무대에 서지 않았던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런데 회사 대표님이 이번엔 꼭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시더라. 해외 무대 영상을 보내주시길래 봤는데 이게 기가 막혔다. 이 정도의 연출을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하는 거면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번에 무대 복귀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마음으로 이미 결정을 내렸음에도 고민을 했던 박정민은 “대표님과 통화하는데 옆에 계시던 황정민 형이 제가 고민한다고 하니까 ‘그럼 하지 마. 내가 할 테니까’ 하시더라. 그럼 하는 게 좋은 건가 보다 하고 오디션을 보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용기를 내서 오디션을 봤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캐스팅한 공연 제작사 측에 감사를 전했다. 박정민은 “한국에서야 배우지만 외국에서는 그냥 아저씨인데 그런 사람을 캐스팅해준 영국의 연출진이 용기를 낸 것”이라며 “무대를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한테 공연을 맡긴다는 용기가 더 크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진심을 표현했다.

사진 제공=샘컴퍼니
8년 전 무대에 섰던 때와 변한 것이 있는지 묻자 “그때나 지금이나 연기적인 기술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건 아닌 것 같다”면서도 “시간이 지나니까 마음가짐 같은 건 조금 변한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배우 생활을 지금까지 8∼9년 더 해온 만큼 그 기간 제가 좌절하고 다짐하고 다시 일어서면서 느꼈던 것들이 굳은살이 돼서 지금 무대에서 연기하는 게 그때보다 더 견딜 만하고 재미있다”고 부연했다.

분명히 존재하는 매체 연기와의 차이점도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박정민은 “무대 연기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영화나 드라마에서) 카메라는 제가 감정을 잡으면 화면을 잡아주는데 무대는 잡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슬프다고 얼굴로 연기를 하면 관객은 ‘뭐하는 거지’라고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이가 느끼는 감정, 그가 처한 상황을 최대한 온몸으로 보여줘야 한다. 무대에서만 할 수 있는 연기가 따로 있다는 것을 8년 전에 공연이 끝나고 알았다. 저는 다 똑같은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무시했던 것”이라며 “그래서 지금 공연은 신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표현하려고 하는데 적응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쉽지 않고 늘 무섭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사진 제공=샘컴퍼니
박정민은 “무용수처럼 몸을 잘 쓰는 배우는 아니어서 모습이 가끔 부끄럽다. 그러다 보니까 공연이 힘들다. 특히 처음에는 1막 끝나고 다들 제 분장실로 와서 괜찮냐며 에너지젤을 하나씩 줬다. 그 정도로 체력적인 고단함이 있다”고 고백했다.

분명 힘든 작업이지만 무대 연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희열도 존재했다. 박정민은 “영화는 대본을 받고 신을 찍으면 그 장면을 영원히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공연은 5∼6개월을 매일같이 같은 장면을 만드는 작업이다 보니까 연기적인 공부도 많이 되고 상대 배우들과도 더 빠르게 돈독해진다. 상대방을 믿지 않으면 이 장면을 만들기가 너무 버겁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한 신을 위해 우리는 6개월 동안 머리를 싸매고 계속해서 좋은 장면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배우로서 굉장히 해볼 만하고 많이 배울 수 있는 작업”이라며 “바로 앞에 관객이 존재하는 게 무서우면서도 좋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가끔 관객 표정이 보이기도 하는데 누군가가 스크린 없이 제 연기를 직접 본다는 건 서로 흥분되고 흥미롭고 신나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긴장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도 배우가 실수할까 봐 긴장감이 들 수 있고 배우 또한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드는 등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사진 제공=샘컴퍼니
인간 박정민에게도 이번 무대는 뜻깊다. 그동안 자신에 대해 알지 못했던 걸 일깨워준 작품이다. 박정민은 “파이는 최선을 다해서 좌절할 줄 알고, 원망도 할 줄 알고, 사랑할 줄도 아는 인물”이라며 “그동안 제가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시각각 감정적인 자극으로 무너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런 게 감정이구나’라는 걸 알려준 것 같다”고 밝혔다.

특히 가장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장면은 오카모토가 진실을 말하라며 강하게 압박을 가하는 신이었다. 박정민은 “그 장면을 정말 못 버티겠다”고 떠올렸다. 아울러 “2시간 동안 당신한테 이렇게 살았다고 힘들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 얘기를 가지고 내가 고국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은 날 조롱하고 비웃을 테니 똑바로 말해’라고 하는 그 말이 너무 잔인하게 들린다. 나는 살기 위해서 선택한 것을 고작 명예 때문에 그런다는 게 참기 쉽지 않을 정도로 그 말을 못 듣겠더라. 어렵사리 살아온 한 소년에게 그렇게 말한다는 게 저는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고 이해를 못하겠다”고 말했다.

주인공 파이는 인도의 동물원을 운영하는 부모님을 둔 10대 소년이다. 박정민은 “영화 ‘기적’ 이후로 절대로 10대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이번엔 멀리서 보이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하고 도전해봤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나이가 어린 역할이라고 해서 어린 연기를 하지는 말자. 그러면 더 나이 들어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다짐했었다. 아이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과 가질 수 있는 감정이나 마음에 더 집중해서 역할을 분석하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럼에도 점점 아저씨가 되어 가고 있는 사람 박정민이 연습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아저씨 같은 추임새나 움직임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모두가 만류하고 영국의 연출진도 저의 신체적인 움직임을 조정해주면서 소년 같은 외형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사진 제공=에스앤코
이번 공연뿐 아니라 원작 소설인 ‘파이 이야기’와 더불어 2003년 이안 감독의 영화까지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다. 공연만의 차별화된 재미를 묻자 박정민은 “주인공 회고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감정의 크기가 다를 것 같다. 소설이나 영화는 어른이 된 파이가 회상을 한다면 공연에서는 이제 막 생존한 소년의 이야기”라고 답했다.

아울러 “이 공연의 텍스트가 가장 감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소설은 조금 더 세밀하고 섬세한 설명을 해주지만 공연 버전의 파이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상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자신의 믿음이나 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파이의 용기, 희망, 좌절 등이 더 아프게 다가오지 않을까. 그 지점이 원작이나 영화와는 다른 것 같아서 더 생생한 감정들을 얻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 무려 8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다음 무대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뒀다. 그는 “이전처럼 절대 안 하겠다는 마음은 아닐 것 같다. 이 공연이 용기를 많이 줬다. 좋은 공연이 있거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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