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신년기획①] “제로백 대신 넷플릭스”…현대차 X 삼성·LG, 도로 위 ‘거실 혁명’

글자 크기
[SS 신년기획①] “제로백 대신 넷플릭스”…현대차 X 삼성·LG, 도로 위 ‘거실 혁명’
삼성의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스마트싱스(SmartThings)’와 현대차의 커넥티드 카 서비스가 연동되면서, 차 안에서 집안의 기기를 제어하는 ‘카투홈(Car-to-Home)’과 집에서 차량을 제어하는 ‘홈투카(Home-to-Car)’가 일상이 됐다. 사진 | 삼성전자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2026년,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의 풍경이 바뀌었다. 전시장 딜러와 고객 사이의 대화에서 “제로백이 몇 초입니까?”, “최고 출력이 얼마나 됩니까?”라는 질문은 자취를 감췄다. 그 대신 “넷플릭스가 4K로 끊김 없이 나오나요?”, “집에 있는 에어컨을 차에서 켤 수 있나요?”가 계약의 핵심 기준(Key Buying Factor)으로 떠올랐다.

내연기관 시대의 심장이 엔진이었다면, 미래 모빌리티의 심장은 ‘반도체’와 ‘콘텐츠’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이 국내 전자 업계의 영원한 라이벌, 삼성·LG와 손을 맞잡고 ‘K-모빌리티 드림팀’을 구축한 이유다.

◇ 현대차에 ‘삼성의 두뇌’ 심다…반도체부터 배터리, IoT까지 ‘혈맹’
‘공간의 확장’도 이뤄졌다. 삼성의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스마트싱스(SmartThings)’와 현대차의 커넥티드 카 서비스가 연동되면서, 차 안에서 집안의 기기를 제어하는 ‘카투홈(Car-to-Home)’과 집에서 차량을 제어하는 ‘홈투카(Home-to-Car)’가 일상이 됐다.
현대차와 삼성의 협력은 자동차의 ‘기초 체력’과 ‘연결성’을 강화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과거 미묘한 긴장 관계를 유지했던 양사는 이제 미래차 시장 선점을 위해 서로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가 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기차의 심장인 ‘배터리’ 동맹이다. 현대차는 삼성SDI의 차세대 각형 배터리(P6)를 오는 2026년부터 2032년까지 유럽 시장용 차세대 전기차에 탑재하기로 확정했다. 그동안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써왔던 현대차가 폼팩터(형태)의 다변화를 꾀하며 삼성과 손을 잡은 것은 양사 협력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공간의 확장’도 이뤄졌다. 삼성의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스마트싱스(SmartThings)’와 현대차의 커넥티드 카 서비스가 연동되면서, 최신 모델을 중심으로 차와 집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카투홈(Car-to-Home)’과 ‘홈투카(Home-to-Car)’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설정만 해두면 갤럭시 스마트폰 알람 해제와 동시에 차량 시동과 공조가 미리 켜지고, 귀갓길 차 안에서 터치 한 번으로 집안 로봇청소기를 작동시키는 식이다. 반도체 분야 역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칩 등에서 기술 협력을 강화하며 미래 모빌리티의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

◇ LG가 빚어낸 ‘달리는 영화관’…물리 버튼 지우고 ‘가전 DNA’ 이식
기아 EV3에 적용된 차량용 웹OS 콘텐츠 플랫폼. 사진 | LG전자
삼성이 자동차의 성능과 연결성을 책임진다면, LG전자는 차 안을 채우는 ‘경험’과 ‘놀이’를 담당한다.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플랫폼(E-GMP) 위에 LG전자의 가전·IT 노하우가 결합하며,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도로 위를 달리는 가장 비싼 가전제품’으로 진화했다.

협업의 진화는 ‘기술의 낙수 효과’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제네시스 같은 1억 원대 럭셔리카에서나 볼 수 있었던 LG의 인포테인먼트 기술이, 최근 출시된 3000만 원대 보급형 전기차 ‘기아 EV3’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LG전자가 독자 개발한 차량용 콘텐츠 플랫폼(ACP)이 탑재되면서, 이제 엔트리급 전기차에서도 스마트폰 연결 없이 넷플릭스, 유튜브, 티빙 등 OTT 서비스를 즐기는 것이 ‘기본 사양’이 됐다.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동맹은 차를 완벽한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탈바꿈시켰다. LG전자의 차량용 플랫폼 ‘웹OS(webOS)’와 MS의 ‘엑스박스 클라우드 게이밍’이 결합하면서, 고가의 콘솔 게임기 없이도 차 안에서 대작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방식은 간단하다. 엑스박스 구독 계정과 컨트롤러만 있으면 된다. 차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순간, 핸들은 잠시 멈추고 화면 속 레이싱이 시작된다. 전기차 충전 시간 20분은 더 이상 지루한 대기 시간이 아니라,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리그 결승전을 치르는 짜릿한 ‘골든 타임’으로 변모했다.

◇ SDV 시대의 생존법… “경쟁자는 타사 차가 아닌 스마트폰”
경기 평택 평택항에서 수출 대기 중인 자동차 뒤로 현대자동차의 로고가 보인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이처럼 현대차가 삼성, LG와 전방위적 협력을 강화하는 배경에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로의 대전환이 자리 잡고 있다. 하드웨어 주행 성능이 상향 평준화된 전기차 시장에서, 차별화 포인트는 결국 소프트웨어 최적화와 콘텐츠 경험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자동차 제조사의 경쟁자는 다른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사용자의 시간을 점유하는 스마트폰이자 거실의 TV”라며 “삼성의 반도체·배터리 기술과 LG의 인포테인먼트 경쟁력을 현대차라는 플랫폼에 얼마나 잘 융합하느냐가 글로벌 1위 도약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각 편대가 빚어낸 시너지는 이제 막 시동을 걸었다. 기계 공학의 정점인 현대차와 전자 산업의 양대 산맥인 삼성·LG의 만남은,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가장 강력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socool@sportsseoul.com

HOT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