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칼럼] 빵 굽는 냄새, 새해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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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칼럼] 빵 굽는 냄새, 새해의 희망
칼럼니스트 진인

새해 첫날, 유난히 오래 마음에 머무는 뉴스가 하나 있었다.
대전의 빵집 성심당 이야기다. 매출 기록도 확장 계획도 아니다. 기부와 나눔 그리고 지역과의 약속을 지켜왔다는 소식이다. 교황 레오 14세가 성심당 창립 70주년을 맞아 공동체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노력에 감사를 전했다는 내용이 전해졌다. 요즘 같은 때, 이런 뉴스는 잠시 걸음을 늦추게 한다. 그리고 멈춰 서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온 게 무엇이었을까.”

성심당은 늘 묘한 존재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자본의 논리로 무장한 대기업도 아니다. 수도권 중심 상권과는 거리가 먼 대전의 한 빵집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일부러 이곳을 찾는다. 빵을 사러 가지만 사실은 ‘신뢰’를 확인하러 간다. “여긴 아직 기본을 지키고 있구나”라는 기대를 안고서 말이다.

그 기본은 거창하지 않다.
정직하게 만들고, 과하지 않게 벌며, 함께 나눈다는 원칙이다. 성심당의 경쟁력은 빵 맛만이 아니다. 물론 빵은 맛있다. 하지만 맛있는 빵집은 많다. 성심당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기준이다. 남길 것은 남기고, 나눌 것은 나눈다는 기준. 더 벌 수 있어도 무리하지 않고, 키울 수 있어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요즘 자영업 이야기를 꺼내면 대개 한숨부터 나온다. 임대료, 인건비, 플랫폼 수수료, 금리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이래서 어떻게 버티냐”는 말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성심당 이야기가 나오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래도 저긴 다르잖아.” 이 말에는 부러움만 담겨 있지 않다.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는 안도와 희망이 함께 섞여 있다.

성심당은 성장 신화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지속’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두 해 반짝한 성공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쌓아온 시간의 힘이다. 그래서 더 믿게 된다. 기부도 그렇다. 이벤트처럼 보이지 않고, 홍보를 위한 장치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원래 저런 곳”이라는 인식이 먼저 떠오른다. 선의가 반복되면 문화가 되고, 문화는 곧 브랜드가 된다.
자본주의는 늘 효율을 요구한다. 더 빠르게, 더 크게, 더 많이. 숫자는 정직하고 시장은 냉정하다. 그러나 시장이 모든 답을 주지는 않는다. 신뢰는 재무제표에 바로 찍히지 않고, 공공성은 분기 실적에 곧장 반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결국 오래 살아남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기본을 지키는 힘, 원칙을 버리지 않는 용기, 상식을 포기하지 않는 고집이다.

성심당은 인간과 지역, 문화의 균형을 보여준다.
사람을 비용으로만 보지 않고 지역을 단순한 상권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빵이라는 일상의 문화 속에 ‘함께 사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그래서 오래 간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지역과 문화를 존중하는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느려 보일지 몰라도 결국 가장 빠른 길이 된다.
이런 사례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성심당 하나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준은 옮길 수 있다. “저렇게 해도 된다”는 선례는 생각보다 강하다. 한 곳이 길을 내면, 뒤따를 수 있는 길이 생긴다. 자영업자에게도 기업에게도 사회 전체에도 마찬가지다.

새해에는 늘 희망을 말한다. 그러나 희망은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구체적인 선택에서 나온다. 성심당이 보여준 선택은 단순하다. 자기 몫을 챙기되 남의 몫을 빼앗지 않는 것, 이익을 내되 신뢰를 소모하지 않는 것.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선택이다. 그래서 성심당 이야기를 새해에 꺼내는 이유다.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 원칙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시장, 상식이 손해가 되지 않는 경제. 인간과 지역, 문화가 함께 숨 쉴 수 있는 질서. 성심당은 그 가능성을 작은 빵집 하나로 보여주고 있다. 새해 첫머리에 이런 기준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면, 출발은 나쁘지 않다. 성심당이 전하는 희망 메시지성심당이 전하는 희망 메시지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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