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산업 현장의 속도에 비해 정책과 입법의 발걸음은 지나치게 더디다. 반도체 산업을 전략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반도체특별법’은 국회에서 1년 반 넘게 표류하고 있다.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확충, 반도체 클러스터 지정, 보조금과 세제 지원,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핵심 내용은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에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주 52시간제’ 논쟁도 발목을 잡아왔고, 각종 쟁점 법안과 정치 현안에 밀려 반도체특별법은 입법 우선순위에서 번번이 뒤로 밀렸다. 필리버스터와 정쟁성 법안 처리, 지도부의 전략적 선택 속에서 반도체특별법은 늘 ‘다음번’으로 미뤄졌다. 국가 전략 산업을 다루는 법안이 정치 일정과 셈법에 종속된 것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반도체 산업은 호황일 때 준비하지 않으면, 불황이 왔을 때는 손쓸 여지가 없다. 지금의 메모리 슈퍼사이클과 AI 반도체 전환 국면은 투자와 구조 고도화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미국은 ‘칩스법(CHIPS Act)’으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고, 일본과 유럽도 반도체를 안보·산업 전략의 핵심 축으로 올려놓았다. 글로벌 경쟁은 이미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간 경쟁으로 전환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여전히 법적·제도적 기반을 완비하지 못하고 있다. 주 52시간제 예외 논쟁 역시 그중 하나다. 노동시간 규제는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중요한 원칙이며, 이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다만 반도체 R&D와 공정 전환의 특수성을 고려한 한시적·제한적·보완 장치가 결합된 유연성 논의까지 봉쇄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는 노동권 후퇴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 산업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회의 선택이다. 반도체특별법은 특정 기업을 위한 법도, 일시적 경기 부양책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기술 주권과 산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토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후순위로 밀려났다는 사실은 국회가 무엇을 국가적 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지 묻게 한다.
반도체 특별법의 골든타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4, 첨단 패키징, 파운드리 회복을 놓고 다시 승부를 거는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기업에만 ‘세계 1등’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 경쟁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다.
기본과 상식은 명확하다. 호황일 때 대비하지 못하면, 위기 앞에서는 늘 뒤늦은 후회를 반복하게 된다. 반도체특별법은 특혜 입법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이다. 반도체가 돌아온 지금이야말로 국회가 입법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워야 할 골든 타임이다. 더 늦출 명분은 없다.
아주경제=김준술 대표 joonsoolkim@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