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여자가 야구한다고 하면 미쳤다고 하죠.”
여자국가대표 투수 김라경의 이 말은 여자야구의 현실을 압축한다. SBS ‘미쳤대도 여자야구’는 한국 사회에서 여자야구가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김라경이 있다. 리틀야구 출신인 그는 남자 선수들이 밟는 중·고교 엘리트 리그를 경험하지 못했다. 여자 선수에게 해당 경로는 열려 있지 않기 때문.
사회인야구 외에는 선택지가 없던 상황에서, 김라경은 선수로 남기 위해 공부를 택했다. 서울대 진학은 꿈이 아니라 전략이었다. 서울대는 특기생이 아닌 일반 학생 신분으로 대학리그에 출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대학 무대에서 가능성을 보였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국내에는 그 다음 단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일본이다. 현재 정상적으로 여자야구 리그가 운영되는 나라는 사실상 일본뿐이다.
김라경은 자신의 영상을 직접 촬영해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 레이디스에 무작정 보냈고, 단 두 달 만에 외국인 선수로 등록됐다. 2025년 3월의 일이다.
일본에서의 삶은 생존에 가깝다. 그는 접골원 보조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정규직 대신 아르바이트를 택한 이유는 선수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김라경은 일본에서 여자야구 선수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야구를 한다고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설명 대신 존재가 허용되는 문화의 차이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다큐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구조적 문제로 시선을 확장한다.
김라경의 다음 목표는 2026년 여름 출범하는 미국 여자프로야구리그(WPBL)이다. 70년 만의 미국 여자프로 무대다. 트라이아웃에는 600명이 도전했고, 1차 체력 테스트와 포지션 평가를 통과한 120명만이 2차 미니게임 테스트에 올랐다. 김라경은 그 120명 안에 포함됐다.
이 도전에는 동료들도 함께한다. 여자 국가대표 ‘수비의 핵’으로 꼽히는 유격수 박주아, 그리고 ‘2루 견제’가 가능한 포수 김현아다. 박주아는 중앙대 체육교육과 3학년, 김현아는 이화여대 스포츠과학과 4학년이다.
미국 땅을 밟은 세 선수는 기본기량을 평가받는 1차 테스트를 통과했고, 2차 미니게임 출전까지 마쳤다.
다음 무대는 워싱턴 내셔널스 홈구장에서 열리는 3차 테스트다. 이 관문을 넘으면, 이들은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야구를 하는 선수가 된다.
‘미쳤대도 여자야구’는 4일 방영 직후 넷플릭스 오늘 대한민국 톱10 시리즈 상위권에 올랐다. 예능이나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의 진입이라는 점에서 의미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개인의 감동 서사가 아니라, 아직 자리잡지 못한 국내여자야구의 현주소와 이를 극복하는 도전의 기록이라 더 의미있다. kenn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