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가해 학생에게는 대입에서 불이익을 주는 등의 강경책을 펼치고 있지만, 정작 피해 학생의 치유·회복을 위한 대응은 빠져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열린 '2026 피해중심 학교폭력 정책토론회'에는 학폭 피해 당사자들과 변호사 등이 참석해 학폭 대응 정책이 '가해자 처벌' 중심에서 '피해자 치유·회복'으로 무게추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학폭 피해자 고(故) 박주원양의 어머니 이기철씨는 "딸을 잃은 후 다시는 주원이와 저 같은 비통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학폭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 참여하기도 하고, 정책 발표회에 나가 의견을 말하기도 했지만 지난 10년간 학폭 현실은 더 처참해지고 있다"면서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학폭에 대응하고 있지만, 피해자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피해 당사자들은 가해자 처벌보다 아이들이 다시 건강하게 살아내길, 친구들과 잘 어울리기를 바란다"며 "그동안 학폭 관련 법·제도는 수차례 개정을 거쳐왔지만, 실질적으로 피해자의 회복과 일상 복귀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고 짚었다.
이씨는 법 개정을 통해 학폭 정책 중심을 '예방·대책'에서 '치유·회복·일상 복귀'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피해 학생 보호조치와 관련해서는 '심의 결과 이후' 중심인 현행법을 개정해, '학폭 인지 시, 사실관계 확정 이전이라도 피해 학생 보호를 위한 조치를 즉시 시행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정 절차를 간소화해 피해자들이 소위 '뺑뺑이' 도는 구조도 개선해야 한다고 봤다. 이씨는 "피해자들은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반복하는 동안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은둔자가 되거나 세상을 등지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며 법 개정을 통해 행정절차를 통합 지원·조정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로 학폭 대응 정책의 질문을 바꿔야 한다"면서 "처벌은 제도의 종료일 수 있지만, 회복은 정책의 시작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재성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 변호사는 학폭과 관련한 법령과 제도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학폭 피해 학생에게 가장 시급한 조치는 가해 학생과의 물리적·공간적 분리이지만, 현 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분리 조치를 내리기 매우 어렵게 설계돼있다"고 말했다.
대입제도와 직접적으로 연계돼있다 보니 심의위원회에서 가해 학생의 조치 수위를 정할 때 '과연 이 사안이 한 학생의 대학 진학을 막을 정도로 중대한가'라는 고민에 놓이게 되고,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를 위한 '전학' 조치는 어렵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 변호사는 "학폭 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된 엄벌주의 정책이 역설적으로 피해 학생의 보호를 약화시킬 수 있는 모순이 있다"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근본적으로 학폭 조치와 대입의 연계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해 학생을 대학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중의 응보적 감정을 해소할 뿐"이라면서 "피해 학생의 실질적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피해 학생을 장기간 분쟁상황에 노출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입 연계 정책을 단기간 내 수정하는 게 어렵다면, 최소한 심의위원회에서 '생기부에 기재되지 않는 가해 학생의 전학·학급교체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는 지난 2024년부터 전국 시도교육지원청 내 폭력제로센터를 설치해 학폭 사안 조사, 피해회복·관계 개선, 법률 서비스 등을 통합 지원하고 있다.
이날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1200여명 규모인 피해 학생 전담 지원관은 2029년까지 2400명가량으로 두 배 늘릴 계획이며, 올 3월 초1~2학년을 대상으로 도입 예정인 '관계회복 숙려제도'를 시작으로 학교급별, 유형별 다양한 관계회복 프로그램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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