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경북 경주 엑스포공원 에어돔에서 열린 'K-테크 쇼케이스' SK 부스에서 관계자가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인 HBM4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엔비디아가 올 하반기 차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 '베라 루빈' 출시를 공식화한 가운데 해당 아키텍처에 탑재할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1순위 공급사(퍼스트 벤더) 자리를 놓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5세대 HBM(HBM3E)은 SK하이닉스가 주도권을 잡았지만, HBM4에서는 삼성전자가 기술 진격에 나서면서 경쟁 구도가 한층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HBM4 12단 제품에 대한 퀄 테스트(품질 테스트) 막바지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늦어도 내달 중에는 최종 결과가 나와 상반기 내 본격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종합반도체회사(IDM)답게 '원스톱 솔루션'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메모리·로직·패키징을 자체적으로 도맡아 공급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경우 TSMC 협력으로 제품 공급하고 있다는 점을 파고든 전략이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는 HBM4 제품부터 최하단부 소재인 베이스 다이를 기존 D램 공정에서 파운드리의 4나노급 미세 공정을 활용하기로 했다. 파운드리 협업을 통해 제품 성능은 높이면서 생산 단가는 최대한 낮추겠다는 복안이다.
제품 성능도 크게 개선했다. HBM4 D램 적층은 10나노급 6세대(1c) 공정을 활용했다. HBM3E에서 발목을 잡았던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특히 SK하이닉스가 한 세대 전 버전인 5세대(1b) D램과 베이스 다이에 12나노 공정을 채택한 만큼, 선단 공정을 통해 기술력을 입증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가운데 엔비디아 관계자들이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 'CES 2026'에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전시관을 전격 방문해 눈길을 끈다. 이날 엔비디아 측 인사들은 약 50분간 전시관을 둘러본 후 삼성전자 관계자들과 약식 미팅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반도체 사업 수장인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은 신년사에서 "HBM4는 고객들에게 '삼성이 돌아왔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며 HBM 기술 경쟁력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퍼스트 벤더를 수성하겠다는 각오다. HBM3E에 이어 HBM4 시장 선점을 위해 지난해 3월 업계 중 가장 먼저 HBM4 샘플을 엔비디아에 전달했다. 이후 6개월 만에 양산 체제 조기 구축을 선언하기도 했다.
엔비디아의 까다로운 요구 수준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SK하이닉스는 HBM3E보다 두 배 늘어난 2048개의 데이터 전송 통로(I/O)를 적용하고 대역폭도 두 배로 늘리며 AI 서비스 성능을 최대 70% 가까이 높였다. 동시에 전력 효율도 40% 이상 개선했다.
엔비디아용 HBM4의 후속 모델도 일찌감치 공개하며 속도전에 나섰다. CES 2026 개막일에 맞춰 현지 고객용 전시관을 통해 HBM4 12단보다 2단 더 높인 16단 48GB를 전 세계 최초 선보이면서다. 데이터 처리 속도는 기존 HBM4 12단과 같은 11.7기가비트(Gbps)로 엔비디아가 요구한 10~11Gbps 수준을 충족하는 걸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최근 계속 강조하는 바처럼 HBM3E 공급과 같이 압도적인 우위 공급사 구도는 형성되지 않을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더라도 이후 안정적인 공급 여부가 핵심 승부처"라고 했다.
아주경제=김나윤 기자 kimnayoon@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