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방예산을 사상 최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유엔 산하기구 등 국제기구에서 대거 탈퇴하며 미국의 외교·안보 노선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다자 협력보다는 '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미국의 대외 전략이 본격적으로 재편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내년도 국방예산을 1조5000억 달러(약 2174조원)로 대폭 증액하겠다는 구상을 공식화했다. 그는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각료들, 다른 정치인들과 길고 어려운 협상을 한 끝에 나는 특히 이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 2027년 국방 예산을 1조 달러가 아닌 1조5000억 달러가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누려야 할 '꿈의 군대'를 구축하고, 더 중요하게는 어떤 적이 있더라도 우리를 안전하고 확실하게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미 의회를 통과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서명한 2026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의 국방 예산은 9010억 달러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약 6000억 달러가 추가로 늘어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에 이날 뉴욕증시 장 마감 후 거래에서는 록히트마틴이 6% 이상 급등한 것을 비롯해 미국 방산주들이 대거 강세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원 마련의 배경으로 자신의 관세 정책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 전례 없는 수준으로 미국을 갈취해온 많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오는 막대한 수익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나는 1조 달러 규모를 유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과거에는, 특히 역사상 최악이던 '졸린'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불과 1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관세와 이를 통해 창출되는 엄청난 수입 덕분에 우리는 쉽게 1조5000억 달러라는 수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바이런 캘런 캐피털 알파 파트너스 방산 애널리스트는 증액된 예산이 실제로 어디에 투입될지와 방위 산업이 이를 흡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국방부 예산이 50% 이상 증가한 사례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가 마지막이었으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재임 시기인 1981년과 1982년에도 국방비 증가는 각각 25%와 20%에 그쳤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비 증액과 함께 방위산업 기업들에 대한 압박도 강화하고 있다. 그는 이날 트루스소셜을 통해 방산업체들이 무기 생산시설 확충과 연구개발(R&D) 투자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하며, 투자 확대가 이뤄지기 전까지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방산 정책 기조는 미국의 최근 대외 군사 행보와 맞물려 눈길을 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작전 이전부터 카리브해 일대에 대규모 군사력을 전개하며 압박을 가해왔고, 멕시코와 쿠바 및 콜롬비아 등을 향해서도 무력 개입 가능성을 피력했다. 또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미군 투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서반구에서 힘의 논리에 기반한 안보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력을 강화하는 반면 국제기구와의 거리 두기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백악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산하기구 31개와 비(非) 유엔기구 35개에서 미국이 탈퇴하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탈퇴 대상에는 유엔 경제사회국, 국제무역센터, 유엔무역개발회의, 유엔민주주의기금, 유엔기후변화협약 등 평화·인권·기후·무역 관련 유엔 산하기구와 기금 31곳이 포함됐다.
비유엔기구 역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국제에너지포럼, 세계자연보전연맹 등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감을 보여온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나 ‘PC(정치적 올바름)’와 연관된 단체와 협약들이다.
기후변화 대응, 평화 유지, 인권 보호 등은 국제 공조가 필수적인 영역인 만큼, 세계 최대 경제·군사 강국인 미국의 이탈은 해당 기구들의 재정과 운영 전반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다니엘 포티 국제위기그룹(ICG) 유엔 담당 연구원은 AP통신에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내 방식대로 하든지 아니면 말든지'라는 미국의 다자주의 접근 방식이 구체화된 모습"이라며 "미국이 원하는 조건에 맞춰 국제 협력을 하겠다는 매우 분명한 비전"이라고 전했다.
아주경제=황진현 기자 jinhyun97@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