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배우’ 안성기 마지막 길…“세상에 필요한 건 착한 사람” 생전 편지로 남긴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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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배우’ 안성기 마지막 길…“세상에 필요한 건 착한 사람” 생전 편지로 남긴 뜻
서울 명동성당 영결식에 600여명 참석 가족·동료 참석…'국민배우' 마지막 길 배웅 “세상에 필요한 건 착한 사람” 생전 편지 정우성 추도사…설경구·조우진 등 운구 배창호 “싫은 소리 않던 유순한 사람” 정순택 대주교 "인품 훌륭한 참다운 스타"
‘국민 배우’ 안성기가 유족과 동료들의 눈물 속에 영면에 들었다.

9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파밀리아 채플에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영결식이 엄수됐다.

9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배우 안성기 영결식을 마치고 배우 이정재(왼쪽), 정우성을 비롯한 동료 배우들이 성당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영결식은 고인이 생전 이사장으로 일하던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의 김두호 이사의 약력 보고로 시작됐다. ‘고래사냥’, ‘하얀전쟁’, ‘실미도’ 등 고인의 대표작이 담긴 추모 영상이 상영되자, 곳곳에서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이어졌다.

영화 ‘무사’에서 고인과 호흡을 맞춘 배우 정우성은 추모사를 통해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는 “선배님은 타인에 대한 배려는 당연하게 여기셨고, 자신에 대한 높임은 경계하고 부담스러워하셨다”며 “선배님은 배우 안성기를 넘어 시대를 잇는 영화인 안성기로서 스스로에게 책임과 의무를 부여하셨던 것 같다. 이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당신 스스로에게 참으로 엄격한 분이셨다”고 말했다. 또한 “선배님의 온화함은 참으로 단단했고 강인했다”며 “지치지 않는 정신으로 확고한 가치관을 온화한 모습으로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으시며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 행동하는 철인이셨다”고 덧붙였다.

고인과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등 13편의 영화를 함께한 배창호 감독은 추도사에서 1980년 봄 광화문에서 우연히 고인을 만나 인사를 나눴던 때를 언급하며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안형은 오로지 영화에만 전념해 1990년대 ‘국민 배우’라는 호칭으로 불렸는데, 내심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를 사랑하고 촬영 현장을 집처럼 여긴 안형,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던 유순했던 안형, 늘 신중하여 생각이 많았던 안형, 투병의 고통을 말없이 감내했던 안형, 함께해 즐거웠고 든든했고 고마웠다”며 “안형의 지난 세월은 주옥같은 작품들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이제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이라며 고인을 기렸다.

9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배우 안성기의 영결식에서 배창호 감독이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뉴스1 장남 다빈씨는 유족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전하며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는 걸 가장 경계하던 아버지의 인생관을 잘 안다. 보답하는 일이 말 몇 마디밖에 없다는 게 마음을 무겁게 한다”며 “아버지는 천국에서도 영화를 생각하고 출연작품을 준비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아버지의 서재, 어릴 때부터 신성한 곳으로 생각해 조심스럽게 들어가던 공간에서 (아버지가) 버리지 않고 모아두셨던 걸 정리했다”며 “저에게 써주신 편지이긴 하지만 저희 모두에게 남긴 메시지 같다”며 다섯 살 무렵 아버지에게 받은 편지를 낭독했다.

“다빈이는 이 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아빠는 다빈이가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시간을 꼭 지킬 줄 알며 실패나 슬픔을 마음의 평화로 다스릴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이라면 바로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9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배우 안성기의 장례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앞서 이날 오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을 떠난 운구 행렬은 7시 40분쯤 명동성당에 도착했다. 임권택 감독,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우 정우성과 이정재가 각각 영정과 금관문화훈장을 들었으며, 배우 설경구·박철민·유지태·박해일·조우진·주지훈이 운구를 맡아 명동성당으로 들어섰다.

영결식에 앞서 명동성당 대성전에서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집전으로 고인의 안식을 기원하는 추모 미사가 봉헌됐다. 미사에는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준익 감독, 배우 현빈·정준호·박상원·변요한 등 영화·예술계 인사 600여 명이 참석했다.

정 대주교는 강론에서 “안성기 사도 요한 형제님은 모든 이에게 사랑받은 국민 배우이자 겸손하고 인품이 훌륭한 참다운 스타였다”며 “한평생 우리나라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에 봉사하며, 고단한 시절 국민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전해주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이어 “고인은 교회의 다양한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나눔과 책임의 삶을 실천했다”고 덧붙였다. 고인은 1985년 명동대성당에서 혼인 성사를 받았으며,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에서 집전한 미사에서 제1독서를 봉독했다. 자녀의 혼인성사 역시 명동성당에서 이뤄졌다.

9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진행된 故 안성기의 영결식에서 동료 선후배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뉴스1 추모 미사와 영결식이 끝난 뒤 운구 행렬은 장지인 양평 열그리다로 향했다. 유족과 동료 배우들을 비롯해 많은 시민이 명동성당을 떠나는 운구차에 인사하며 고인을 떠나보냈다.

고인은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다. 2020년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재발해 회복에 전념했다.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져 중환자실에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했고, 6일 만인 지난 5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에 출연하며 아역배우로 데뷔해 69년간 170여 편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활약했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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