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5층 대저택을 주시오, 까르띠에 목걸이 드릴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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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5층 대저택을 주시오, 까르띠에 목걸이 드릴테니
보석공방으로 시작한 까르띠에 성공신화 뒤 숨은 에피소드 담아 1916년 ‘100만불 진주 목걸이’ 재력가 대저택과 맞교환 유명 팔찌 시계서 착안 ‘산토스시계’ 재클린 케네디 상징 ‘탱크’까지 귀족취향 넘어선 브랜드 거듭나 스위프트가 시계 착용 이슈도 “여성 사회 지위 변화도 보여줘”
더 까르띠에/ 프란체스카 까르띠에 브리켈/ 서정은·서재희 옮김/ 케이커넥톰/ 3만6000원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 하우스 ‘까르띠에(Cartier)’ 창업가의 6대손인 저자 프란체스카 까르띠에 브리켈이 수백 통의 가족 서신과 아카이브를 직접 발굴하며 펴낸 책이 최근 한국어로 출간됐다. 책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은 까르띠에 설립 가문이 4세대에 걸쳐 쌓아 올린 꿈과 도전, 성공의 역사를 담고 있다.
‘더 까르띠에’의 저자 프란체스카 까르띠에 브리켈. 케이커넥톰 제공 탱크 워치를 착용한 재클린 케네디. 까르띠에의 출발은 소박했다. 1847년,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가 파리의 작은 보석 공방을 인수하며 역사가 시작된다. 까르띠에를 세계적 명성으로 끌어올린 주역은 그의 손자 세대인 루이, 피에르, 자크, 이른바 ‘까르띠에 삼형제’였다. 이들은 각자 파리, 뉴욕, 런던을 맡아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이는 오늘날 명품 비즈니스의 원형이 됐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1970년 4월 제4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까르띠에 다이아몬드 네클리스를 착용한 모습. 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오늘날 남성의 필수품처럼 여겨지는 손목시계. 그러나 그 기원은 의외로 여성의 팔찌 시계에 있다. 까르띠에 시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브라질 출신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이다. 그는 비행 중 회중시계는 조정대를 놓지 않고는 꺼내 시간을 확인할 수 없어 불편하다고 자주 불평했다. 이를 전해 들은 루이 까르띠에가 해결책을 제시한다. 당시 여성 치장용 액세서리인 팔찌 시계에 착안해 세계 최초의 현대적 손목시계 중 하나인 산토스를 만든 것. 이 사례는 까르띠에가 단순히 귀족 취향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과 생활의 변화를 읽어낸 브랜드였음을 보여준다.

진주 목걸이 하나의 값으로 뉴욕의 랜드마크 건물 한 채를 사들인 일화도 소개된다. “1916년, 피에르는 뉴욕 부티크에서 당시 세상에서 가장 비싼 목걸이로 알려진 진주 목걸이를 선보였다. 각각 55개와 73개의 흠 없는 진주로 만든 두 줄의 진주 목걸이였고, 그 가치는 당시 100만달러가 넘었다. 목걸이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서른한 살의 메이지 플랜트는 목걸이에 강렬하게 매료됐다. 메이지는 철도와 증기선 사업으로 부를 쌓은 모턴 플랜트의 아내였다. 뉴욕 요트 클럽의 제독과도 같았던 모턴은 그의 젊은 아내를 애지중지하기로 유명했다. 어느 날 저녁, 디너 파티에서 피에르와 나란히 앉은 메이지는 진주 목걸이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면서도 자신은 구매할 능력이 없는 척했다. 그러나 피에르는 60대인 모턴 플랜트가 두 번째 아내인 메이지를 열렬히 사랑하며,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프란체스카 까르띠에 브리켈/ 서정은·서재희 옮김/ 케이커넥톰/ 3만6000원 또 그가 5번가와 52번가 모퉁이에 있는 저택을 매각하려 한다는 점도 알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르네상스 양식의 5층짜리 궁전 같은 저택과 진주 목걸이의 가치는 둘 다 100만달러였다. 이에 피에르는 모턴 플랜트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당신의 저택을 준다면, 이 진주 목걸이를 양도하겠습니다. ’ 다행히 메이지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진주 목걸이와 저택의 열쇠 꾸러미가 맞교환됐다. 얼마 후 까르띠에는 5번가와 52번가에 있는 새 건물로 이사한다. ”(156∼157페이지)

까르띠에 역사에서 왕좌와 맞바꾼 에메랄드 반지 대목은 흥미롭다.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는 왕좌 대신 사랑을 택했다. 그가 선택한 이는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프슨. 그녀의 손에 낀 것은 까르띠에 에메랄드 반지였다. 윈저 공작 칭호를 받고, 월리스 심프슨은 윈저 공작부인이 된다. 그녀를 위해 제작된 까르띠에 보 석들은 사랑과 집착, 권력 포기의 상징이었다. 왕위를 버린 남자의 선택과, 그 선택을 장식한 보석은 까르띠에가 감정과 스토리를 디자인한 브랜드임을 잘 보여준다. 미국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는 까르띠에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꾼 인물로 꼽힌다. 그녀는 과장된 보석 대신, 탱크 시계를 즐겨 착용했다. 특히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생전에 선물한 탱크 시계는 재클린의 상징처럼 회자한다.

저자는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 왕비가 되며 손에 낀 약혼반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목을 장식한 전설적인 다이아몬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손목 위에서 시간을 새기던 시계가 최근에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착용하면서 젠지(Gen Z: 1997∼2012년 출생·디지털 네이티브)들의 ‘롤렉스’로 불리는 등 역사적으로 주요한 인물의 한 장면을 연결하는 브랜드가 ‘까르띠에’였다”고 설명한다. 책은 단순한 한 명품 브랜드의 연대기를 넘어 19∼20세기 유럽과 미국의 문화사, 소비의 변화, 여성의 사회 지위 변화까지 자연스럽게 아우르며, ‘명품’은 단지 비싼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견뎌낸 선택의 축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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