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담긴 정겨운 맛의 기억… 포근함을 부르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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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담긴 정겨운 맛의 기억… 포근함을 부르네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동대구역 새마을식당 동대구역 근처 산책하다 발견한 골목 끝자락 너머 색 바랜 간판 안락한 분위기에 끌려 자리 잡아 두루치기·찌개 등 가정식 메뉴들 여덟가지 밑반찬 하나같이 단정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 구이 일품
오랜만에 대구로 향한다. 군 복무 시절 수없이 오르내리던 동대구역이 다시 목적지가 됐다. 사람은 변했지만, 여전한 모습의 동대구역은 기억을 불러낸다. 국밥 한 그릇, 소금에 절인 고등어 한 점처럼 시간은 그렇게 맛으로 남아 있었다.
고등어백반과 계란말이 한상 ◆동대구역

경북 성주로 출장이 잡혀 대구행 기차에 올랐다. 성주로 바로 가는 교통편이 없어 동대구역에서 렌터카를 빌려 이동했다. 몇 년 만의 대구일까. 20년 전 포항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아직 포항에 KTX가 뚫리기 전이라 휴가나 외박을 나올 때면 포항에서 대구로 가기 위해 선임, 동기 몇 명이 자연스럽게 한 팀이 됐다. 포항에서 동대구역까지 택시를 타고 올라가는 길은 길면서도 설레는 시간이었다.

동대구역에 도착하면 서둘러 기차표를 예약하고 근처 국밥집에 들렀다. 정확한 상호는 기억나지 않지만, 입구에서부터 그리운 냄새가 확 풍겨 나오던 곳이다. 뚝배기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국밥 앞에 앉자마자 소주를 한 병 시킨다. 술잔을 따르기 무섭게 게 눈 감추듯 잔이 비워진다. 그래도 딱 두어 잔이다. 설레는 기분을 적시기엔 그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제야 휴가가 시작됐다는 실감이 났다. 휴가를 나오면 ‘짬’이 찼다 해도 결국 국밥과 술 한 잔 앞에서는 다 똑같았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무섭던 선임들도 그래 봤자 스무 살 남짓이었다. 군 복무 시절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다만 가끔, 그때의 나를 멀리서 한 번쯤 바라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

새마을식당 외관 ◆새마을식당 간고등어

일정을 마치고 다시 동대구역으로 향하는 길. 운전하는 내내 옛날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착했다. 기차 시간을 조금 여유 있게 맞춰두고, 오랜만에 동대구역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계절마다 떠오르는 음식들이 있는데, 덜 추운 애매한 겨울 날씨는 그런 기억들마저 흐리게 만든다. 신천동 골목에는 젊은이들을 위한 가게들이 멋들어지게 들어서 있다. 카페부터 파스타집, 초밥집, 이국적인 태국 음식점까지 상권이 다양하다. 하지만 이 계절에 마음이 가는 집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골목 끝자락 너머, 색 바랜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새마을식당’. 동명의 프랜차이즈에 가려 검색에도 잘 나오지 않는 식당이다.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외관은 마치 영업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픈(OPEN)’이 적힌 LED 간판이 유난히 반갑게 다가왔다. 가게 안은 놀라울 만큼 안락했다. 세월을 이겨낸 난로 위에는 주전자가 올려져 있고, 보리차가 따끈하게 끓고 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훑는다. 두루치기, 찌개, 생선구이, 계란말이. 포근한 가정식 메뉴들이다.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풍기던 고등어구이 냄새는 이미 선택을 끝내게 만들었다. 고등어구이와 계란말이를 주문했다. 난로 위 주전자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김, 아주머니들의 일하는 소리, 무심히 틀어둔 텔레비전 소리까지. 늦은 오후의 휴식으로는 더할 나위 없다.

곧 반찬이 차려졌다. 여덟 가지 반찬은 하나같이 맛이 단정하다. 특히 연근조림이 인상적인데, 한 점뿐이라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의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짭조름한 고등어 한 점 먹어보니 맥주를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기차로 다니는 출장은 주류 제한이 없다는 점에서 묘한 자유를 준다. 고등어와 맥주의 조합은 생각보다 훌륭하다. 밥 위에 고등어 살을 얹어 먹다 보니 문득 할머니가 떠올랐다. 가장 도톰한 살을 알뜰하게 발라 숟가락 위에 올려주던 그 손길은, 시간이 지나도 이렇게 불현듯 찾아온다.

국내산 고등어는 수입산에 비해 비루하고 투박하다. 하지만 소금에 절인 감칠맛과 미네랄을 머금은 그 맛은 밥과 함께하며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정이 간다. 야채가 듬뿍 들어간 계란말이도 좋다. 슴슴한 맛의 한국식 오믈렛이다. 나는 케첩보다 간장을 찍어 먹는 편인데, 간장에 찍은 계란말이는 훌륭한 술안주가 된다. 모든 음식을 안주로 만들어버리는 스스로가 가끔은 못마땅하지만, 음식과 술은 어쩔 수 없는 동반자다. 다른 가게들이 브레이크 타임에 들어갈 무렵, 이 새마을식당은 오히려 더 분주해진다. 오후 세 시 이후 하나둘 들어차는 손님들을 보며 자리를 정리했다. 부족한 건 없었느냐며 건네는 아주머니들의 인사에, 문을 나서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간고등어

간고등어는 맛을 위해 탄생한 요리라기보다 환경이 만든 음식에 가깝다. 바다에서 멀어진 내륙, 특히 경북 안동 일대에서 고등어는 귀한 생선이었다. 조선시대부터 동해안에서 잡힌 고등어는 염장된 채 내륙으로 옮겨졌다. 소금은 보존을 위한 수단이었고 그 과정에서 지금의 저장 겸 조리법이 완성됐다. 짧은 염장은 수분을 빼고 고등어 특유의 비린 향을 눌렀다. 기름진 생선의 지방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그래서 간고등어는 양념보다도 불의 세기가 중요하다. 센 불에 껍질을 먼저 구워 지방을 녹이고, 살을 익힌다. 간고등어 한 점에는 유통의 역사와 생활의 지혜가 남아 있다. 그런 맛들이 단순하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버터에 구운 금태 구이와 모렐버섯 만들기 금태구이와 모렐버섯
금태 필레 1개, 건 모렐버섯 1개, 무염버터 30g, 간장 10mL, 설탕 5g, 버섯 불린 물 50mL, 다진 샬롯 30g, 마늘 1톨, 백후추 조금, 샐러드오일 15mL, 타임 2줄기.

①건 모렐버섯은 물에 불린다. ②팬에 다진 샬롯을 볶은 후 모렐버섯에 채워준다. ③모렐버섯은 오일에 구운 후 버섯을 불린 물과 간장, 설탕에 천천히 졸여준다. ④금태는 오일에 껍질부터 익힌다. ⑤버터와 타임을 넣고 향을 내준 후 백후추를 뿌려준다. ⑥접시에 금태를 올리고 버섯을 곁들인다.

김동기 다이닝주연 오너셰프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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