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서부지법 난동 사태로 기소된 피고인 중 일부는 1000만원 상당의 영치금을 받은 사례가 확인됐다. 그동안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비롯한 보수 단체가 이들에게 영치금을 보낸 것은 알려졌지만, 개별 피고인의 영치금 액수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애국전사’로 불리며 보수 성향 유튜버와 정치인, 종교단체 등에서 조직적으로 지원받았다. 수감자의 생활 자금 마련을 위해 만들어진 영치금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방 와 빚 다 갚았다”
13일 취재를 종합하면 이 사건과 관련해 141명(지난달 1일 기준)이 기소됐는데, 법정에 선 피고인 66명의 영치금 계좌 정보가 보수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공유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목록에 이름을 올린 한 피고인은 “구속돼 있는 반년 동안 영치금이 1000만원 정도 모였다”며 “가계 빚을 감방에 와서 다 갚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고인도 “구속 기간 동안 일도 못 하고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영치금이 넉넉하게 들어와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법무부 보관금품 관리지침에 따르면 한 수용자가 수감 기간 중 보유할 수 있는 영치금 잔액은 400만원으로 제한된다. 이를 넘는 금액이 입금되면 구치소 측이 수용자 개인 명의 통장을 추가로 개설해 보관하며, 석방 시 한도를 초과한 금액을 포함해 모두 받을 수 있다.
피고인들을 응원한다며 재판을 방청한 보수 성향 유튜버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커뮤니티에 영치금 계좌 목록을 올렸다고 했다. 그는 “(계좌가 알려진) 구속 피고인들이 대략 1000만원씩은 받았을 것”이라며 슈퍼챗(후원)으로만 대략 2000만~3000만원을 모았고, 직접 전달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고 했다. “최대한도 400만원이 채워진 피고인들을 여럿 봤다”고 덧붙였다.
서울서부지법을 습격해 난동을 부린 시위대 중 한 명이었던 김태영(31)씨가 지난해 12월24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2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원심은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씨는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가 이를 기각하자 상고했다. 최상수 기자 ◆‘애국청년’ 호명하며 계좌 공개 피고인들을 향한 영치금 후원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편지 한 통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지난해 2월5일 내란주요임무종사 혐의로 서울 동부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김 전 장관은 옥중서신을 통해 자신에게 온 영치금을 ‘서부지법 60여분의 애국청년들’에게 나누겠다고 밝혔다. 그는 “법원의 잘못된 판결로 촉발된 사태에 분노한 애국청년들의 구국정신에 뜻을 같이한다”며 30여 계좌에 영치금을 입금했다고 했다. 피고인들을 ‘애국전사’로 호명한 이 편지는 서부자유변호사협회(협회)를 통해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전여옥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전여옥 페이스북 캡처 이후 일부 보수 정치인들도 영치금 지원 사실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같은 해 2월7일 전여옥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유튜브 커뮤니티에 ‘자유서부법률지원단 애국투사 현황’이라며 피고인 34명의 영치금 계좌를 공개했다. 사흘 뒤에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여러분이 마음 모아 보내주신 ‘선거정의국민연대’ 회비로 서부지법 관련 구속되신 분들께 영치금을 넣어드렸다”고 말했다.
지난 2025년 1월 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울 서부지법에 지지자들이 진입해 난동을 부리고 있다. 뉴스1 이 같은 움직임이 조직적인 모금으로 확대된 것은 유튜브를 통해서다. 구독자 120만명인 성창경TV를 비롯해 정광용TV, 젊은시각 등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잇달아 계좌 목록을 올렸다. 유튜브 ‘신의한수’ 대표 신혜식씨는 “친한 유튜버 2명과 총 7500만원을 영치금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리박스쿨 관련 의혹을 받는 ‘중앙고애국동지회’는 지난해 3월 윤 전 대통령 지지자 모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애국청년 38명에 대한 영치금으로 1인당 30만원씩 총 1140만원을 지원했다”는 글을 올렸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지난 2025년 1월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고 있다. 뉴스1 ◆“영수증 모으며 연대감 느껴” 영치금은 피고인들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공동체와 심리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5월 협회 소속 변호사가 공개한 한 피고인의 편지에는 “영치금 계좌로 수많은 애국자분들께서 잊지 않았다고 힘내라며 보내주시는 응원 메시지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적혔다. 다른 피고인도 “많은 분들이 영치금을 넣어주셨고 영수증에 한 장 한 장 써있는 응원 문구들과 저와 같은 마음을 지니신 분들의 이름들을 볼 때마다 말도 안 되게 기운이 솟았고 연대감과 커다란 용기를 얻었다”며 “우리 모두 반드시 승리하자”고 했다.
수감자의 생활자금인 영치금이 정치적 지원의 창구로 활용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재구속된 이후 109일 동안 6억5725만원의 영치금을 받았다. 대통령 연봉(2억6258만원)의 2.5배가 넘는 금액으로, 총 1만2794회에 걸쳐 입금됐다.
이예림·윤준호·소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