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전기요금 고지서 앞에 선 기업가정신, 한국은 준비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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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상 컬럼] 전기요금 고지서 앞에 선 기업가정신, 한국은 준비돼 있는가
미국 위스콘신주의 전력요금 체계는 최근 조용히 바뀌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처럼 전기를 대량으로 쓰는 기업에는 기존보다 훨씬 높은 요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불만이 나올 법도 했지만, 이 제도의 도입을 공개적으로 반긴 쪽은 의외였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브래드 스미스 MS 사장은 한발 더 나갔다. “전력회사가 우리에게 더 높은 요금을 매겨달라.
그리고 공공위원회는 그 요금을 승인해달라.” 빅테크 최고경영자의 입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말이다. 규제를 피해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규제를 먼저 적용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AI 데이터센터는 더 이상 ‘조용한 서버 창고’가 아니다. 미국 곳곳에서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가 됐고, 그 부담은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졌다. 데이터센터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이 문제가 실제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치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기업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비용을 피할 것인가, 아니면 감당할 것인가.
 
MS는 후자를 택했다. 데이터센터 전력 비용을 지역사회가 아니라 기업 내부로 끌어안겠다는 판단이다. 이 선택은 ‘착한 기업’의 제스처가 아니라 기업가정신의 문제다.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보고서에 한 줄 적는 일과 전기요금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은 전혀 다르다. 후자는 이익을 깎아 먹을 각오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흐름에 메타도 합류했다. 메타는 원전 기업들과 6.6GW 규모의 전력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데이터센터에서 쓰는 에너지 비용을 전액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지 않겠다”는 문장은 단순하고 분명했다.
 
정치권의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AI 데이터센터는 미국의 자유와 안전을 지키는 핵심이지만, 그 비용은 기업이 져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못 박았다. 이는 반기업 선언이 아니라 기술 패권을 지속하기 위한 최소 조건에 가깝다.
 
이제 질문은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넘어온다. 한국은 AI 데이터센터 확충 경쟁에 뛰어들고 있지만, 전력 비용의 귀속 구조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수도권과 일부 지역에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서 송전망 확충, 전력 안정화, 지역 갈등 문제가 동시에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그 비용이 어디에서 회수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없다.
 
현재 구조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기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한국전력의 요금 체계 안에 흡수되고, 이는 결국 전체 소비자 부담으로 번진다. AI 산업 육성이라는 이름 아래 비용은 희석되고 책임은 흐려진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한국의 AI 전략은 기술 논쟁이 아니라 요금 논쟁으로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AI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보조금이나 구호가 아니라 비용을 누가 감당하느냐의 문제다. 기업이 비용을 내부화할수록 사회적 저항은 줄고 기술의 확장성은 커진다. 반대로 비용을 숨기거나 떠넘길수록 갈등은 더 빠르고 거칠게 온다.
 
기업가정신은 여기서 다시 정의돼야 한다. 더 빠른 서버와 더 큰 모델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전력 수요와 인프라 부담을 회피하지 않고 사업 모델 안으로 흡수하는 용기, 그것이 AI 시대 기업가정신이다.
 
한국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AI 데이터센터를 유치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비용을 기업이 지게 할 것인가, 사회가 대신 떠안을 것인가의 문제다. 전기요금 고지서는 이미 와 있다. 아직 이름만 적히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픽노트북LM[그래픽=노트북LM]
 
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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