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한국의 원화 가치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제 펀더멘털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번 발언은 단순한 환율 코멘트를 넘어, 외환시장 안정과 한·미 경제 신뢰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드러낸 신호로 읽힌다. 특히 구윤철 경제부총리와의 면담 이틀 만에 나온 메시지라는 점에서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환율은 시장의 영역이지만, 과도한 변동성은 언제나 정책의 책임으로 되돌아온다. 원화 약세가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과 괴리돼 있다는 미국 측 인식은, 외부에서 본 한국 경제가 여전히 견조하다는 평가인 동시에 “불필요한 불안은 관리돼야 한다”는 경고다. 이는 환율 수준 그 자체보다 정책 신뢰와 예측 가능성, 그리고 메시지 관리의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봐야 한다.
해외 사례는 분명한 교훈을 준다. 1990년대 중반 멕시코 페소 위기 당시, 위기의 방아쇠는 재정 적자보다도 정책 당국의 엇갈린 신호와 시장과의 불신이었다. 반대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달러 강·약 논쟁 속에서도 “강한 달러는 미국의 이익”이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유지하며 시장의 기대를 관리했다. 통화의 힘은 숫자가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주목할 점은 이번 발언이 한·미 간 대규모 투자 약속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다. 총액 500조원대에 이르는 대미 투자는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환율 안정과 자본 이동의 신뢰를 전제로 한 장기 약속이다. 원화 가치의 급격한 약세가 지속될 경우 투자 이행의 속도와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역시 자국 산업 전략의 실행 변수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미국은 교역국의 ‘의도적 통화 약세’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이번처럼 특정 통화의 급락을 문제 삼으며 “과도한 변동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공개 언급한 것은 방향이 다르다. 압박이라기보다 관리 요구에 가깝고, 비판이라기보다 책임 있는 대응을 주문한 메시지에 가깝다. “시장은 진실보다 일관성을 먼저 본다”는 금융 격언이 떠오른다.
환율은 숫자이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의 신뢰가 있다. 이번 발언은 원화 약세에 대한 평가이자, 한국 경제가 그 신뢰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주문이다. 정부는 단기 환율 방어에 매달리기보다 재정·통화 정책의 일관성을 분명히 하고, 외환시장에 대한 메시지를 정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장과 싸우지 말고, 시장을 설득하라’는 오래된 원칙을 다시 새길 때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경제 운용만이 과도한 변동성을 잠재우고,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지켜낼 수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오른쪽)은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한미 재무장관회의를 가졌다. [사진=재정경제부] 아주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