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혁 칼럼니스트] 붉은 말의 해, 병오년 희망찬 새해가 밝았으나 연일 터져나오는 정치권발 비리 의혹들로 온나라에 악취가 진동한다. 김병기와 강선우, 김경, 이혜훈... 요즘 가장 핫한 뉴스거리를 줄기차게 제공하는 전현직 공직자들이다. 이들이 없다면 신문사는 과연 정치면을 무엇으로 채울수 있을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성추행 의혹과 딸 결혼식 축의금 수수 논란에 시달리던 장경태·최민희 의원 뉴스가 한순간에 자취를 감췄듯 이슈가 이슈를 덮는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괜한 기우이긴 하겠지만.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강선우 의원은 당시 민주당 공천관리위 간사였던 김병기 의원을 만나 김경 시의원에게서 1억원을 수수한 사실을 털어놓으며 “저 좀 살려달라”고 읍소했고, 이 공천 비리는 녹취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공천헌금은 말이 좋아 헌금이지 사실상 뇌물이다. 공천헌금을 주고받았다는 건 민의로 선출되어야 할 공직을 사고팔았다는 말과 같다. 선거의 공정성과 정당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범죄 행위다. 이재명 정권 출범 직후 여가부 장관 후보로 지명되었다가 보좌관 갑질로 낙마한 상흔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불미스러운 의혹에 휩싸인 강선우 의원은 민주당을 자진 탈당하는 등 잔뜩 웅크리고 있으나 그 정도로 사태가 봉합될지 의문이다. 김병기 의원의 대화 녹취로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강 의원으로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심정이리라.
김병기 의원은 같은 당 동료 의원과의 대화를 왜 녹음했을까? 정작 김 의원도 보좌관 갑질과 직권 남용, 공천헌금 수수, 편입과 취업 청탁 아빠 찬스, 법카 유용 등 본인과 가족 관련 의혹이 열 건이 넘는다. '사모총장'이란 신조어를 낳았을 정도로 부인의 위세가 대단했다. 그럼에도 그는 당이 제명을 의결했음에도 탈당을 거부하고 재심을 청구하는 등 한동안 버티기로 일관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국정원에서 블랙요원을 관리하며 오랜 세월 잔뼈가 굵은 김 의원은 정치를 공작으로 여긴 듯하다. 상대 불문 '닥치고 녹음'은 그 징표일 것이다. 김 의원은 통화용과 녹음용 휴대폰이 따로 있다고 알려졌다. 그의 휴대폰에 뭐가 녹음되어 있는지 몰라 민주당 의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니 휴대폰이 김병기의 최종병기이자 판도라의 상자가 됐다.
강선우에게 1억 돈다발을 안긴 김경, 김병기를 찾아가 자신을 살려달라고 읍소한 강선우, 이 대화를 통째로 녹음한 김병기. 이 세 사람이 합주하는 비리와 부패 3중주는 타락한 정치의 음습한 민낯을 보여준다. 강 의원이 불과 초선 2년차 때 억대의 뇌물을 스스럼없이 받았다는 건 공천헌금이 관행이더라는 김경의 진술을 뒷받침한다. 이런 마당에 민주당이 휴먼 에러니 개인 일탈이니 하면서 눙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설상가상, 권력의 눈치를 보며 늑장수사, 부실수사로 일관하는 경찰의 행태는 검사의 수사권 박탈, 즉 '검수완박'으로 상징되는 검찰 개혁의 당위성에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 이래저래 민주당의 속앓이는 깊어만 간다.
이달 19일로 인사청문회가 예정되어 있는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는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보좌진에 대한 히스테릭한 갑질과 폭언으로 세상을 화들짝 놀라게 하더니 영종도 땅 투기, 로또 아파트 부정청약, 아들의 논문·취업·병역 특혜를 위한 부모 찬스,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그야말로 '1일 1의혹', 날마다 새로운 의혹이 줄줄이 터져나온다. 부모로부터 거액을 증여받은 장남이 6년간 대학교로부터 생활비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아니나다를까, 우리나라 정치인들 99%가 감염되어 있는 악성 바이러스 '내로남불'이 이 후보자라고 비켜갈 리 없다. 이 바이러스는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것 같다. 이 후보자가 받고 있는 비리 의혹 상당수는 이전에 자신이 남들을 매섭게 공격하던 사안들이다. 편법과 탈법을 넘나들며 가족과 함께 저지른 여러 의혹들로 인해 과거의 발언이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고 있으니 '제2의 조국'이라는 별칭이 과하지 않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이 후보자는 모든 의혹을 청문회에서 해명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현 정부에서 임명된 여타 장관들처럼 하루만 버티면 된다는 심산일까?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발탁은 통합 의지의 발로인가, 생방송 업무보고를 통해 드러난 전 정부 인사 홀대와 반통합적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역발상의 묘수인가, 혹자의 분석대로 보수로 보수를 흔들려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인가.
무엇보다도 이 후보자는 통합의 대상으로 적합한 인물인가? 털면 먼지처럼 나오는 이 후보자의 문제를 대통령이 과연 몰랐을까? 모 중앙지 논설위원은 '죽은 고양이 던지기 전략' 아니냐고 의심한다. 이 전략은 덜 중요하지만 충격적 이슈를 던져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더 중요한 이슈에서 멀어지게 하는 국면전환용 술수를 말한다. 무엇이 진실일까? 진실을 알고 싶으면 입이 아니라 눈을 보고, 현재의 언행 말고 과거의 언행을 살펴보라고 했다. 힌트는 책략에 능한 이재명 대통령의 과거 행적에 있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연일 이 후보자를 맹폭하는 것도 보기 딱한 일이다. 그래봐야 '누워서 침 뱉기' 아닌가 말이다. 발탁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 대통령도 인사 리스크 부담이 있겠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에도 우호적이지 않다.
공직사회에 만연한 일탈과 비리로 옳고 그름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세상이다. 이럴 때 우리는 옛 성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논어》 '이인편(里仁篇)'에 이런 말이 있다. "군자는 올바름(義)에 밝고, 소인은 이익(利)에 밝다. (君子喻於義, 小人喻於利)" 군자는 일을 논할 때 그 일이 도덕상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묻지만, 소인은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만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공자는 의(義)와 이(利)의 상관관계를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공자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익을 추구하지만, 정치인은 의를 가치기준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맹자는 한발 더 나아가, 군주가 이익을 따지면 신하들과 백성들도 이익을 따져서 세상이 온통 이해다툼의 경연장이 될 것이고 그러면 정의와 도덕이 소멸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했다. 이익이 아니라 올바름이 공직자가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라는 따끔한 일침이다. 직권을 사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행위는 본래 추구해야 할 공정함과 정의라는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소인의 전형적인 행태다. 이러한 비리는 공동체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온전히 설 수 없다. 소인배들에게 나랏일을 맡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연일 난타를 당하면서도 의원직은 물론이고 장관 후보자 사퇴도 없이 꿋꿋하게 버티는 이들을 위해 한 말씀 더 보탠다. 유교 오경(五經)의 하나로, 예법의 이론과 실제를 풀이한 《예기(禮記)》 '표기(表記)편'에 나오는 말이다. "임금을 섬기면서, 나아감은 어렵게 하고 물러남은 쉽게 한다면 자리에 차례가 있다. 쉽게 나아가서 어렵게 물러난다면 문란해지고 만다. 그래서 군자는 세 번 읍하고 나아가고, 한 번 사양하고는 물러나 어지러워짐을 멀리한다. (事君難進而易退, 則位有序. 易進而難退, 則亂也. 故君子三揖而進, 一辭而退, 以遠亂也.)" 모름지기 공직에 나설 때는 세 번 삼가고 떠나야 할 때는 미련을 두지 말라는 충고다. 성어 '난진이퇴(難進易退)'가 이 문장에서 유래했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자아내는 뉴스가 샘솟듯 하는 나라의 국민 노릇하는 것도 일종의 극한직업이다. 강선우, 김병기 의원, 이혜훈 후보자, 김경 시의원은 정치를 왜 하는 걸까? 이들에게 공직이란 무엇일까? 국민이 절망하는 건, 이들처럼 권력 의지만 넘칠 뿐 공직을 맡을 기본 소양조차 결여된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거다. 공직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물러나야 할 때는 여론의 동향을 살피며 일단 버티고 본다. 난진이퇴가 아니라 '이진난퇴(易進難退)'가 뉴노멀이 됐다. 이런 사회를 제대로 된 사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아주경제=유재혁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