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AI 칼럼] 바다 위에서 시작된 'AI 전쟁'…한국 조선의 다음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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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AI 칼럼] 바다 위에서 시작된 'AI 전쟁'…한국 조선의 다음 승부수
태평양을 건너는 배 위에는 더 이상 선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인공지능이 항로를 읽고 위험을 계산한다. HD현대의 자율운항 전문회사 아비커스가 HMM 선박 40척에 자율운항 솔루션을 공급하기로 했다. 단일 계약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상징성이다. 이번 계약은 단순한 장비 납품이 아니다. AI가 조선과 해운의 주변 기술이 아니라 중심 기술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아비커스의 하이나스 컨트롤 시스템은 단순한 인지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판단을 넘어 제어까지 수행한다. 항해 보조가 아니라 항해의 주체에 가깝다.

이 변화는 사고를 줄이고 연료를 절감한다. 선원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에도 대응한다. AI가 비용 절감 도구를 넘어 산업을 유지하는 장치로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왜 이 기술이 지금 주목받는가. 조선업은 오랫동안 규모의 산업이었다. 누가 더 싸게 만들고 더 빨리 납품하느냐의 경쟁이었다. 그러나 그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이제 선박 가격보다 중요한 것은 운영 효율이다. 같은 배라도 누가 더 똑똑하게 굴리느냐가 수익을 가른다. AI는 그 격차를 만들어내는 핵심 변수다.

HD현대의 전략은 분명하다. 데이터다. 이미 수백 척의 선박에서 축적된 항해 데이터가 있다. AI는 경험을 먹고 자란다. 이 격차는 쉽게 따라잡을 수 없다. 한화오션은 더 멀리 본다. 방산 기술과의 결합이다. 무인선과 상선을 동시에 겨냥하며 완전 자율운항이라는 높은 장벽을 쌓으려 한다. 전략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AI가 조선의 부가가치를 결정한다는 인식이다.
 선박 항해로 확산하는 AI선박 항해로 확산하는 AI
정부도 움직이고 있다. 완전 자율운항 선박을 목표로 한 대규모 연구개발이 시작됐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는 이 분야를 전략 산업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제 조선업의 경쟁력은 철판 두께가 아니다. 용접 기술도 아니다. AI가 항로를 어떻게 설계하느냐다.

이 변화는 한국 경제 전반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AI는 소프트웨어 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제조업과 물류, 에너지까지 파고든다. 한국이 강점을 지녔던 산업에서 AI를 붙잡지 못하면 경쟁력은 빠르게 증발한다. 반대로 AI를 먼저 얹는다면 기존 산업은 다시 성장 동력이 된다.

바다 위에서 시작된 이 실험은 육지의 산업 전략으로 이어져야 한다. AI는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 됐다. 조선업이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증명하고 있다.
김준술 방송총괄국장 joonsoolkim@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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