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동시에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을 압박하고 나서면서 금융권에서는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일부 금융지주는 부랴부랴 사외이사 주주 추천제도를 도입하고 그룹 2인자가 돌연 사임하는 등 사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 안팎에서는 결국 회장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제왕적 지배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금융지주 지배구조 점검이 금융당국의 ‘내 사람 챙기기’가 아닌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사외이사 추천받아요”…지배구조 개선 나선 금융지주19일 금융권에 따르면 BNK금융지주는 사외이사 주주 공개 추천제도를 공식 도입하기로 하고 30일까지 사외이사 추천을 받고 있다. BNK금융은 사외이사 과반을 주주가 추천한 사람으로 선임할 방침이다. 사외이사가 모두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참여하도록 해 객관적 검증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iM금융지주도 오는 23일까지 주주들로부터 사외이사 예비후보자를 추천받고 있다. 추천된 예비후보자는 내달 중 외부 인선자문위원회의 평가 등 절차를 거쳐 iM금융 사외이사 통합후보군으로 선정·관리된다.
JB금융지주는 김기홍 회장의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백종일 부회장이 취임 9일 만에 돌연 사임하고 고문으로 직책을 바꿨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1인 부회장’에 부담을 느낀 JB금융이 부회장 체제를 포기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는 아직 지배구조 개선책을 발표하지 않고 금융당국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선제적인 움직임에 나서기보다는 금감원 특별점검 결과나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TF) 논의 결과에 발맞춰 움직이겠다는 계산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별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자체적인 노력은 상시 운영 중인 사안”이라며 “금융당국이 TF를 구성한 만큼, 논의를 통해 도출된 과제 위주로 개선하면서 정책과 보폭을 맞추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단독 사내이사 칼 댈까…‘부적절한 관행’도 도마 위에다만, 이와 같은 변화에도 금융당국의 압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왕적 지배구조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는 ‘단독 사내이사’ 체제는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빈대인 BNK금융 회장, 황병우 iM금융 회장, 김기홍 JB금융 회장은 각각 회사 이사회에서 유일한 사내이사다.
JB금융 이사회에는 김지섭 이사가 기타비상무이사로 참여하고 있지만, 그는 JB금융의 대주주인 삼양그룹 소속이다. 경영진을 견제하는 역할보다는 대주주의 경영 참여를 위한 창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지주 회장이 유일한 사내이사로 이사회에 참석하면 회사의 모든 주요 의사결정을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모든 정보가 한 명에게 집중된다는 점, 사외이사에 대한 영향력이 강해진다는 점 등도 문제로 꼽힌다.
이에 따라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감원이 이번 금융지주 지배구조 특별점검을 통해 이사회의 올바른 구성(집합적 정합성)과 독립성을 들여다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나치게 사외이사가 많은 것도 이사회 구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단독 사내이사 체제를 정조준하고 나선다면 우리금융지주도 사정권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이사회 내 유일한 사내이사다.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는 핵심 계열사인 은행의 최고경영자(CEO)이자 경영승계 후보군 중 한 명인 이환주 KB국민은행장과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각각 기타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함영주 회장뿐 아니라 이승열 부회장과 강성묵 부회장도 이사로 선임해 ‘3인 사내이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금감원이 밝힌 ‘부적절한 지배구조 관행’에 대한 점검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감원은 △회장 후보 선정 직전 이사 나이 규정을 현임 회장에게 유리하도록 변경 △회장 후보 서류 접수 기간이 5영업일에 불과 △이사회 집합적 정합성 확보를 위한 관리지표 항목을 자의적으로 해석 △사외이사 평가 실효성 부족 등을 지배구조 관행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통해 개선된 내용이 실제 경영 의사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작동되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이행하거나 운영 단계에서 우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오는 23일까지로 예정된 특별점검을 마무리하면 금융당국의 보폭은 한층 더 커질 전망이다.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3월까지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배구조 선진화 TF 실무진 회의를 매주 진행할 방침이다. 이에 더해 특별점검 결과 발표 이후에는 금융지주 회장을 직접 불러 개선안의 신속한 이행을 당부할 계획이다.
“핵심은 이사회 독립성…실질적인 제도개선 이뤄져야”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당국이 칼을 뽑아 든 만큼 이번에는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금융지주들이 2년 전 도입한 모범규준을 형식적으로 지키고 있다는 점을 금융당국이 인정한 만큼 실질적인 개선책이 도출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이사회가 독립성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보은다. 개정 상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주주로 확대한 만큼 상법 위반 소지가 없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수박 겉핥기식’ 대책을 내놓는 데 그친다면 새 정부가 금융지주 회장을 교체하기 위해 지배구조만 들쑤셨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자칫 ‘관치금융’으로 보이면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배구조 개선 작업의 핵심은 연임 제한이 아니라 이사회 독립성 확보여야 한다”며 “능력 있는 회장이 기업을 잘 성장시켰다면 연임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반대의 경우 이사회가 회장을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배구조를 제대로 만들어야 기업가치 제고(밸류업)가 되고, 코스피 5000도 넘길 수 있다”며 “시스템을 잘 설계·운영한다면 관치금융 이슈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주경제=장문기 기자 mkmk@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