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신창재의 선택, AI 시대 기업가정신은 무엇을 묻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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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상 컬럼] 신창재의 선택, AI 시대 기업가정신은 무엇을 묻고 있는가 
교보증권이 AI·디지털자산 중심의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기획부 산하에 ‘미래전략파트’를 신설해 인공지능(AI), 디지털 전환(DX), 디지털자산과 데이터 전략을 전담하도록 했고, 디지털자산 관련 조직도 확대했다. 기술을 단기 실험이 아니라 중장기 성장 전략의 전제로 삼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이 변화는 자연스럽게 그룹 차원의 리더십으로 시선을 옮기게 한다. 신창재 회장의 기업가정신은 지금 어떤 기준으로 읽혀야 할까. AI가 계산과 예측, 최적화를 대신하는 시대에 기업가정신은 더 이상 과감한 결단이나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판단이 이뤄지는 구조를 어떻게 설계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어디에 두었는가다.
 
이 기준에서 보면 교보증권의 이번 조직개편은 의미가 분명하다. AI와 디지털자산을 전사 전략의 중심에 둔 것은 기술을 유행이나 장식이 아니라 경영 판단을 고도화하기 위한 기반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기술을 책임의 대체물이 아니라, 책임 있는 판단을 돕는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방향성으로 읽힌다.
 
다만 기업가정신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기술 도입 자체로 완결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장면은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 때다. AI가 개입한 의사결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이 시스템이나 환경 설명으로만 귀결되지 않고, 최종 판단 주체가 분명히 인식되는지가 신뢰의 기준이 된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책임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일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해외 사례에서도 같은 교훈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보잉은 항공기 사고 이후 기술적 설명에 집중하다가, 책임 인식이 분명히 드러난 뒤에야 신뢰 회복의 출발선에 설 수 있었다. 기술은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책임의 주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또 하나의 기준은 실패를 어떻게 다루는가다. 실패를 개인의 오류로만 처리하면 조직은 같은 문제를 반복한다. 반대로 실패를 점검하고 제도의 학습으로 전환할 때 조직은 더 단단해진다. 일본 도요타가 대규모 리콜 이후 생산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하며 경쟁력을 회복한 과정은, 학습 중심 접근이 장기 신뢰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창재 회장은 그동안 장기적 관점과 사람 중심 경영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이는 단기 성과에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의 강점으로 평가받아 왔다. 이제 AI 시대에는 이 철학이 조직과 제도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으로 떠오른다. 기술과 제도가 발전할수록, 책임의 원칙을 어떻게 구조 안에 고정했는지가 기업가정신의 핵심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권한이 있는 곳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오래된 격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AI 시대의 기업가정신은 영웅적 결단을 찬양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을 활용하되 그 결과 앞에 서는 책임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교보증권의 이번 선택이 던지는 질문도 결국 여기에 닿아 있다. 이 판단의 책임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그래픽노트북LM[그래픽=노트북LM]

 
아주경제=임규진 사장 minjaeho58@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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