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 안 되고 어지럽다?…노인 우울증은 마음대신 몸으로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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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 안 되고 어지럽다?…노인 우울증은 마음대신 몸으로 웁니다
1. 40대 A씨는 요즘 칠순을 맞은 아버지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정정하셨던 아버지가 하루 종일 집에만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을 모시고 갔더니 뜻밖에도 노인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A씨는 무기력해진 어머니가 혹여 치매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2. 동네에서 소문난 수다쟁이였던 B씨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완전히 딴사람이 됐다. 좋아하던 수영장도 끊고, 웃음기도 사라졌다. 어머니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가족들이 수시로 전화를 드리고 주말마다 찾아뵈며 관심을 쏟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병원 문턱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65세 이상 노년층의 정신건강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많은 어르신이 우울증을 단순한 노화 현상 등으로 치부하다 증상이 심각해진 뒤에야 병원을 찾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노년기 우울증이 노인 자살의 주요 원인이자 삶의 질을 파괴하는 질병이라며 적극적인 관심과 치료를 주문했다.

변기환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일 노인 우울증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급한 공중보건 과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가정신건강포털에 따르면 일반 노인 인구의 주요 우울장애 유병률은 1~4%, 경미한 우울증은 4~13%에 이른다. 특히 만성 질환을 앓는 노인의 경우 발병 위험이 두 배 이상 뛴다.

문제는 이러한 우울증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0.6명으로, 전체 인구 평균인 26명을 훨씬 웃돈다. 노년기는 가장 우울하고, 동시에 자살이 가장 많은 세대인 셈이다.

노인 환자들은 두통, 어지러움, 소화불량, 허리 통증 등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 증상을 주로 호소한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내과나 정형외과 등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를 받느라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기 쉽다. 변 교수는 면밀히 상담해보면 신체 증상 이면에 깊은 우울감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뚜렷한 병명 없이 몸이 아픈 증상이 지속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노년기 우울증은 치매와 증상이 유사해 감별이 까다롭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주의력과 기억력이 떨어지고 멍한 상태가 지속되는데, 이를 ‘가성 치매(Pseudodementia)’라고 부른다.

변 교수는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치매는 되돌리기 어렵지만, 우울증으로 인한 인지 저하는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인지 기능이 회복되는 가역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치매 환자의 상당수가 우울 증상을 동반하므로, 치매 치료 과정에서도 우울증 관리는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언제 병원을 찾아야 할까. 의학적으로는 하루 종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흥미나 즐거움의 현저한 감소, 식욕 및 체중 변화, 불면 혹은 과수면, 죽음에 대한 반복적 사고 등의 증상 중 5가지 이상이 2주 넘게 지속되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때 주요우울장애로 진단한다.

변 교수는 은퇴와 사별 등 상실이 많은 노년기에 우울증을 방치하면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며, 노년기 우울증을 생리적 노화 과정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100세 시대, 액티브 시니어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본인은 물론 가족과 사회가 노년기 우울증에 대해 편견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성연 기자 y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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