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해군 콜린스급 잠수함이 하와이 진주만에 입항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세계 각국에선 발트해에서 벌어진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2022년), 홍해 해저 케이블 절단(2024년) 등의 사건이 잇따르면서 해양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해저 케이블이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99%와 금융거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저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세계 각국에서 잠수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다수의 국가는 정치·재정적 제약으로 핵추진잠수함을 보유할 수 없다. 따라서 첨단 기술을 적용한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이 유럽 등 잠재적 구매국과 조선소를 중심으로 주목받는 모양새다.
독일 해군 212급 잠수함이 부상한 채 대기하고 있다. TKMS 제공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이 주목받는 이유 과거에도 독일산 209급처럼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이 널리 쓰이기는 했으나, 최근의 추세는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해저 케이블과 파이프라인에 대한 위협 증가에 대처하려면, 잠수함은 저속으로 오랜 기간 잠항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해저 케이블과 파이프라인이 설치된 해역을 순찰하면서 잠재적 위협을 저지할 수 있다.
해저 케이블과 파이프라인 다수는 해안과 가까운 해저에 있다. 해당 시설을 파괴하고자 접근하는 적대 세력을 저지하려면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이 필수다. 해상초계기와 구축함 외에도 잠수함이 필요하다.
핵추진잠수함을 확보하면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기술적 난도가 높고 제작비가 매우 비싸다. 비확산 등의 정치적 문제와 글로벌 차원의 규제장치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서 한국 해군의 손원일급 잠수함 안중근함이 계류시험을 하기 위해 미국 해군 잠수함지원함인 에모리 S. 랜드함에 접근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때문에 많은 국가들이 핵추진잠수함 보유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실적 대안으로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의 성능 강화가 주목을 받고 있다. 예산만 있으면 언제든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수요가 증가하는 이유다.
이는 기존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의 기술과 성능이 급속하게 향상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고성능 재래식 잠수함으로 핵추진잠수함의 전략적 임무 중 일부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오랜 기간 조용히 바닷속을 항해하며 작전을 펼치기 위해 기존 납축전지보다 훨씬 우수한 공기불요추진장치(AIP)와 리튬이온 전지 등을 장착한 잠수함이 등장하고 있다.
독일과 노르웨이가 공동개발한 212CD급 잠수함은 AIP와 리튬이온 전지를 장착, 잠항 시간과 고속이동 성능이 크게 향상됐다.
A2/AD의 일부로서 연안에 기뢰를 부설, 적대 세력의 해안 접근을 거부하는 기능도 주목을 받고 있다.
스페인 해군 이삭 페랄급 잠수함이 조선소 도크에 정박해 있다. 나반티아 제공 스웨덴 사브가 개발해 스웨덴 해군용으로 건조중인 블레킹에급 잠수함은 2000t급으로서 디젤 엔진과 스털링 AIP를 사용해 잠항 기간을 늘리고 소음을 낮췄다. 어뢰와 더불어 기뢰 60여발을 탑재한다. 핵추진잠수함이 아닌데도 제한적이나마 전략적 억제력이 추가되는 형태도 있다.
네덜란드 해군은 지난 2024년 프랑스 나발 그룹이 제안한 바라쿠다급 핵추진잠수함을 재래식 동력 잠수함으로 바꾼 3000t급 잠수함을 도입하기로 했다.
최신 배터리 기술 덕분에 사용 가능 에너지 용량이 증가했으며, 잠수함은 더욱 긴 시간 수중에 머무를 수 있다. 미국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운용 능력을 갖춰 전략적 타격력도 갖췄다.
한국 해군 장보고-Ⅲ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 유사시 북한 내륙의 전략표적을 타격할 능력을 보유했다.
프랑스 나발그룹이 만든 스코르펜급 잠수함이 수면 위로 항해하고 있다. 나발그룹 제공 세계 각국에서 첨단 기술을 적용한 잠수함 수요가 증가할 조짐을 보이자 글로벌 조선업계도 잇따라 세계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과거엔 독일과 프랑스가 경쟁했지만, 스웨덴·스페인·한국도 세계 시장에 뛰어들었다. 스페인은 자체 개발한 이삭 페랄급 잠수함을 앞세워 수출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한국도 폴란드 오르카 프로젝트에서 수주에 실패했으나,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수주를 노리고 있다.
◆첨단 성능·패키지 전략 결합해야 수주 성공
경쟁이 치열해질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잠수함 성능 강화와 더불어 치밀한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장에서 잠수함의 가치는 여전히 크지만,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한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특히 레이더, 음파탐지기, 해수 온도와 염분 데이터 등의 다양한 정보를 인공지능(AI)으로 종합 분석해 잠수함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이는 잠수함의 가장 큰 가치인 은밀성을 위협하는 요소다.
대만이 독자 개발한 하이쿤 잠수함이 진수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소음 저감과 더불어 적 센서에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독일과 노르웨이가 만든 212CD 잠수함은 세계 최고 수준의 스텔스 기능을 갖고 있다.
선체는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 해상초계기 자기탐지장비를 회피하고, 음향 흡수타일을 붙여서 음파탐지기 신호를 흡수한다. 기관부는 진동·소음 감소 기술이 적용됐다.
AI와 전투체계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도 필수다.
급속하게 발전하는 센서 기술은 함장과 승조원에게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함장이 신속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려면, AI와 전투체계가 데이터를 실시한 융합해서 의사결정을 지원해야 한다. 이는 잠수함의 상황인식 능력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브라질 해군이 도입한 스코르프펜급 잠수함이 도크에 접안해 있다. 나발그룹 제공 잠수함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첨단 기술이 대거 반영된 잠수함의 건조비는 매우 비싸며, 앞으로도 더욱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고가의 잠수함을 단일 용도로 활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다. 따라서 잠수함을 다양한 임무에 투입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전망이다.
수중에서 해안으로 특수전부대를 침투시키는 작전, 무인잠수정을 함께 투입하는 유·무인 복합체계, 지상타격능력을 갖춘 미사일 탑재 등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잠수함을 건조하는 조선소들의 전략도 기존보다 한층 정교해야 한다.
첨단 기술이 반영된 잠수함을 비싼 값에 구매한 국가들은 30∼40년간 일선에서 잠수함을 사용한다. 지난달 퇴역한 한국 해군 장보고함도 1993년 취역해서 30여년을 활동했다.
한국 해군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이 대잠수함전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제주해군기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기술의 급속한 발달 또는 차세대 잠수함 건조 지연은 성능개량 수요를 키운다. 한국 해군도 기술 발전 추세에 맞춰 장보고-Ⅰ·Ⅱ 잠수함 성능개량을 실시했고, 스페인 해군도 이삭 페랄급 잠수함 개발 과정에서 기술적 문제가 발생, 기존 잠수함 성능개량을 진행한 바 있다.
오랜 기간 잠수함이 활동하려면 유지보수와 성능개량, 현지 정비가 필수다. 이를 위해선 조선소가 잠수함 구매국이 원하는 수준의 성능개량과 창정비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맞춤형 패키지 전략을 갖춰야 한다.
이는 잠수함 건조 조선소에 수십년에 걸친 매출을 보장한다. 또한 구매국의 잠수함 기술 표준을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서 다른 경쟁사들이 해당 국가에 진출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진입장벽을 만드는 효과가 있다.
이 과정에서 현지 업체와의 협력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한화오션이 구상하는 미래형 잠수함의 모형. 박수찬 기자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해외에서 잠수함을 구매한 국가는 관련 기술의 현지화에 대한 요구가 크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상황에서 현지 기업이 정비를 하는 것이 잠수함을 판매한 조선소 입장에서도 효율적이다. 시장 확대 등을 위한 잠수함 공동개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거론된다. 독일과 노르웨이는 212CD 잠수함을 함께 만들어서 수요를 키웠다.
한국도 HD현대중공업이 지난달 페루 해군 및 시마조선소와 차세대 잠수함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HD현대중공업은 자체 기술에 페루의 작전 요구 사항을 반영한 페루형 차세대 잠수함 개발을 목표로 연구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다.
2030년대 잠수함 시장은 단순한 선체 판매로 성과를 얻을 수 없다.
해저 인프라가 설치된 연안 지역 방어, AI·무인체계의 결합, 전략적 억제력과 재정·경제적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선 정교하면서 장기적 관점의 기술 개발과 판매 전략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잠수함 조선소 간 머리 싸움도 한층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