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대홍수’ 이슈로 보는 OTT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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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대홍수’ 이슈로 보는 OTT의 속성
‘대홍수’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지난 연말부터 박나래 이슈와 함께 대중문화계를 들끓게 했던 ‘대홍수 이슈’가 이제 소강상태로 가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 ‘대홍수’ 얘기다. 국내 평가는 극단적 혹평의 연속인데 글로벌 시장에선 가장 성공적인 한국 넷플릭스 영화로 거듭난 데 따른 혼란이 이슈화를 부추겼다. 온갖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 ‘대홍수’ 폄하가 잇따랐고, 이에 몇몇 영화평론가들이 나서 지나친 대중의 힐난을 비판하기도 했다.

일단 ‘대홍수’ 상황부터 다시 점검해 보자. ‘대홍수’는 공개 3일 만에 2790만 시청 수를 기록 하며 기존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 첫 주 기록이었던 ‘황야’의 1430만 시청 수를 배 가까운 수치로 경신했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72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속력도 상당하다. 지난해 12월15~21일자 넷플릭스 영화 부문 글로벌 1위, 12월22~28일자에서도 1위를 유지했다. 둘째 주 시청 수가 3310만으로 첫 주를 가볍게 넘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언급했듯, 대중 평가는 좋지 않다. 1월4일까지 1만5000여 명이 참여한 포털사이트 네이버 네티즌 평점에선 10점 만점에 4.18점을 기록 중이다. 1~2점을 준 이들이 전체의 61%로 가장 많다. 흥미로운 건, 계속 시청 1위를 달린다는 미국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단 점이다. 영미권 사용자가 다수인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 평점은 5.4, 영미권 비평가 의견을 총합한 로튼로마토에서 역시 신선도는 52%, 관객 점수는 그보다 낮은 34%다. 그런데도 어째서 ‘대홍수’는 글로벌 1위를 차지하고 미국 같은 주요 시장서 연일 1위 자리를 지키는 걸까.

간단히 풀자면, 먼저 넷플릭스 등 각종 OTT 공간에서 인기가 있단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단 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캐리온’ ‘백 인 액션’ ‘그레이 맨’ ‘댐즐’ 등 영화 제목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들은 역대 넷플릭스 시청 수 순위에서 영화 부문 10위 내 랭크된 영화들이다. 시청 시간 순위, 시청 가구 순위 등에서 10위 내 들어가는 ‘퍼플 하트’ ‘프로젝트 파워’ ‘아빠는 되는 중’ 등도 대부분 낯설다. 이들은 대부분 ‘대홍수’처럼 인터넷무 비데이터베이스 평점이나 로튼토마토 신선도도 모두 떨어진다.
결국 넷플릭스 등 OTT는 그저 가볍게 볼 수 있는 콘텐츠, 소비자들이 어떤 콘텐츠일지 대번에 알아볼 수 있는 콘텐츠가 선택되는 공간에 불과하단 얘기다. 그러니 극장가 티켓파워는 휘발된 애덤 샌들러나 에디 머피 등 코미디 배우 등이 넷플릭스에선 가장 인기 있는 스타가 된다. 대중이 어떤 영화일지 캐스팅과 포스터만 보고서도 대뜸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홍수’는 많건 적건 이런 OTT 속성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재난영화 성격을 명확히 드러내는 포스터와 트레일러가 홍보 선두로 섰고, 여기에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 글로벌 관심도가 점차 높아지는 현실이 가미된 정도.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특이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작 중 비평적으로나 대중 만족도 차원에서 불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은 건 사실 ‘대홍수’ 이전까지 한국 콘텐츠도 마찬가지란 점이다. 당장 기존 한국영화 첫 주 1위 기록을 보유하던 ‘황야’만 해도 그렇다. 네이버 네티즌 평점은 4.89이고,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 평점도 5.9다. 국내외로 만족도 측면에선 사실 ‘대홍수’와 별 차이도 없는 셈이다. 그런데 왜 ‘황야’ 당시엔 쏟아지지 않았던 열화와도 같은 비난이 유독 ‘대홍수’에선 말 그대로 홍수처럼 밀려들었던 것일까 말이다.

이에 대해선 해가 다르게 혐오와 비난이 거세지고 거칠어지는 인터넷 문화 등이 거론되기도 하고, 그런 해석이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좀 다른 측면을 살펴봐야 할 필요도 있다. ‘대홍수’에 대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한 줄 비평, “착점이 솔깃하지만 장르의 전환을 설득해내지 못한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볼 만 하단 것이다.

그대로 ‘대홍수’는 장르 전환 영화다. 여러 장르가 이리저리 혼합된 형태가 아니라 전개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장르가 전환돼 버리는 영화, 자연재해 관련 재난영화로 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SF 전개로 바뀌어버리는 영화다. 특히 ‘대홍수’는 영화 포스터부터 트레일러 등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봐도 전형적인 재난영화로서 홍보됐다고 봐야 하지만 막상 영화는 그런 기대를 배신(?)한 형태였단 점에 대중의 불만이 유난히 고조된 것이라 볼 필요도 있단 것.

물론 이런 장르 전환 영화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각본을 바탕으로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연출한 1996년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범죄 스릴러에서 뱀파이어 호러로 뜬금없이 전환되는 ‘황혼에서 새벽까지’ 경우 그 장르 전환 자체를 일종의 ‘장난’이자 ‘유머’로서 받아들이게끔 설계된 형태라 대중에 불쾌감 없이 소화됐다. 영화 자체를 진지하지 않은 하나의 커다란 농담처럼 여기게 했단 얘기다. 진지 하고 어떤 의미에선 성찰적이기까지 한 ‘대홍수’와는 거리가 있다.

‘대홍수’의 장르 전환은 많은 점에서 제임스 카메론의 1989년 작 ‘어비스’에 쏟아졌던 비판을 닮은 구석이 있다. ‘어비스’는 당시 한 미국 비평을 옮기자면, “‘심해의 다이하드’처럼 시작해 ‘E.T.’처럼 끝난다”는 전개다. 마찬가지로 진지하며 다소 성찰적이기까지 한 기묘한 장르 전환 블록버스터였고, 그야말로 ‘심해의 다이하드’처럼 홍보된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 기대를 배신 한 탓에 역대 가장 인기 없는 카메론 영화 중 하나로 남게 됐다.

당시 ‘어비스’는 그런 관객들 불만 탓에 극장 흥행에서 참패했다. 그러나 ‘대홍수’는 넷플릭스 영화이고, OTT는 그런 불만 요소가 있더라도 일단 접근이 쉽고 가벼운 선택 중심인 탓에 ‘대홍수’ 같은 콘텐츠도 간단히 소비될 수 있는 공간이란 점이 다르다. 어쩌면 모든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 것일지 모른단 얘기다. 생각해보면 단순한 사연이지만, 언급했듯, 극장에서라면 분명 실패했을 것 같은 콘텐트가 오히려 글로벌 대성공을 거두고 있단 점에 혼란이 일면서 이슈가 증폭된 측면이 강해 보인다. 그렇게 지난 연말의 ‘대홍수 이슈’는 어쩌면 미디어 플랫폼 다양화 및 각각의 속성 이해와 관련해 더 중요한 화두를 던지는 이슈였을 수도 있겠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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