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천이 제 삶의 중심입니다. ”
충북 제천시에 사는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4세 리 알렉산더(52)씨는 12일 “말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가족도 모두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제는 한국을 ‘이주지’가 아닌 ‘정착지’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충북 제천시에 정착한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4세 리 알렉산더 씨가 제천의 한 식당에서 요리하는 모습. 제천시 제공 알렉산더씨는 2016년 가족과 함께 모국 땅을 밟았다. 경기 안산시에서 공장과 건설 현장을 오가던 그는 지난해 8월 제천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는 “안산은 동포가 많아 한국어를 쓸 기회가 적었고 사회 적응에도 한계가 있었다”며 “제천은 일상이 한국어 학습의 장이고 비자 특례가 적용되는 인구소멸지역이라는 점도 이주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였다”고 말했다. 제천시는 인구감소 대책으로 ‘고려인 등 재외동포 이주 정착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알렉산더씨는 이주 고려인이 4개월간 무료로 거주하며 언어 교육과 각종 정착 지원을 받는 재외동포지원센터에 머물고 있다.
그는 1975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다. 증조부가 경남 진주에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고 1937년 스탈린 체제 강제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에 정착했다. 할아버지는 러시아, 할머니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이다.
그는 키르기스스탄 국립대학교에 진학했으나 가정 형편으로 2학년 때 중퇴했다. 이후 석유회사 자재관리와 보안, 자동차 관리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한국에 오기 직전에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요리 경험도 쌓았다.
알렉산더씨의 한국행은 자녀 교육에 대한 걱정이 한몫했다. 큰아들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부품 회사에 취업했다. 둘째 아들은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다. 딸은 결혼 후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다.
정착 과정에서 고비도 있었다. 최근 건설 현장에서 용접 작업 중 낙상 사고로 발을 다쳐 산재 치료 중이다. 월 150만원 남짓한 산재 보상금으로 가족 부양이 빠듯해 보상금을 포기하고라도 재취업 준비를 고민하고 있다.
그는 다시 ‘코리안 드림’에 대한 희망을 쏘아 올리고 있다. 수입은 줄었지만 제천의 자연환경과 따뜻한 이웃 공동체가 주는 만족감이 크면서다.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 도움도 컸다. 행정과 언어, 생활 상담까지 폭넓은 지원으로 적응이 빨랐기 때문이다. 알렉산더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며 “이제는 모국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알렉산더씨는 부부 합산 연 소득 5000만원을 달성해 영주권(F-5)을 취득하는 것이 목표다. 아내가 취업 제한 없는 비자를 받을 수 있고 집도 장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꿈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전통식을 접목한 고려인 전문 식당을 창업하는 것이다.
그는 “음식을 매개로 지역 사회와 문화를 나누며 제천에 완전히 뿌리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청주=윤교근 기자 segey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