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린 시절 벽지에 낙서하다 부모님께 혼난 기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모든 아이는 본능처럼 벽지에, 거실 장판에 무언가를 끄적인다. 순수한 예술혼을 불태운 집안 곳곳은 거대한 스케치북으로 변해간다. 낙서인지 그림인지 모를 작품활동을 말리다가도 끝내 웃음이 터진 부모님의 따뜻한 눈빛으로 기억되는 하루.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는 “모든 아이는 예술가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예술가로 남게 만드냐다”라고 말했다. 아이의 낙서를 지우고 벽지를 지킨 그날, 어쩌면 아이 안에 자라나던 예술의 싹을 누른 건 아닐까. 개인의 육아 고민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질문이다. 예술의 씨앗이 움트려면 저마다 품고 있는 잠재력을 발견할 ‘기회’가 필요하고, 그 기회는 결국 ‘가까운 일상’에서 만들어진다. 예술이 특별한 날에만 멀리 찾아가는 경험에 머물면, 많은 이들에게 어렵고 비싼 취미로 남는다. 반대로 익숙한 동네 풍경 속에서 예술을 마주할 수 있다면 ‘일상이 예술이 되는’ 기적이 시작된다.
전성수 서초구청장 물론 예술의전당처럼 1년 365일 음악이 흐르는 탄탄한 인프라도 중요하다. 하지만 관건은 예술을 도시 곳곳에 ‘퍼뜨리는’ 일이다. 방법은 의외로 많다. 통행량이 줄어든 지하보도는 조금만 손보면 작은 연주회나 전시가 가능한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 공원, 복지관 등 공공시설은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짧은 공연과 전시가 열리는 무대가 될 수 있고, 마을버스 정류소 승차대 같은 생활 구조물에 작품을 걸면 출퇴근길이 곧 갤러리가 된다. ‘보러 가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으로 예술의 문턱이 낮아지는 순간, 무명의 연주자와 미술작가에게는 소중한 무대가, 주민에게는 더 쉽게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열린다. 예술은 힘이 세다. “코로나19로 집에만 머물 때 우울증이 생겼는데 합창단을 하면서 삶의 활력을 찾았다”라는 한 어르신의 말씀처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마음을 회복시키고 공동체를 잇는 게 진짜 예술의 힘이다. 그렇다면 예술 정책의 목표도 분명해진다. 전 세대가 일상에서 더 쉽게 ‘예술’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살면서 악기 하나쯤은 제대로 배우고, 공연을 준비하며 우정의 하모니를 체득할 기회, 청년 예술가부터 중장년층까지 정기적인 무대에 오를 기회가 필요하다. 아이의 낙서가 예술이 되기까지, 청년 예술인이 세계로 뻗어나가기까지, 가장 중요한 건 이처럼 일상이 기회가 되는 ‘진짜 예술 생태계’다. 점심시간에 길을 걷다 잠시 멈춰 공원 음악회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달라진다. 매일 작은 쉼표들이 하나둘 쌓여 도시의 정서를 만들고, 공동체의 온도가 되어 우리 일상을 따뜻하게 만들 것이다.
전성수 서초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