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만 존재해 온 독특한 임차 제도인 전세 시대가 저물고 있다. 최근 임대차 데이터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한 시장 변동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기에 진입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한국부동산원은 임대 유형을 보증금 규모에 따라 월세·준월세·준전세·전세로 세분화해 가격지수를 산출한다. 이 기준으로 2025년 10월 데이터를 보면 월세→ 준월세 →준전세→전세 순으로 상승률이 점차 낮아진다. 같은 아파트 시장 안에서도 전세형 임대차의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임대차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수요자들은 보증금을 높여주기보다 매달 월세를 더 내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집값 상승기처럼 전세보증금이 급등하던 흐름과는 정반대의 국면이다.
서울은 이러한 변화가 더욱 빠르고 선명하다. 2023년 이후 이어진 대규모 전세사기와 보증금 사고는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 임차인에게 가장 큰 심리적 충격을 남겼다. 고가주택 중심의 시장 구조는 전세대출의 이자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서울의 월세·준월세 지수의 상승 속도는 전세·준전세 가격지수를 넘어선 상태다.
이 변화의 본질에는 전세제도가 유지되어 온 '무이자 조달 구조'의 한계가 있다. 전세는 임대인이 임차인의 보증금을 사실상 무이자로 조달해 운용할 수 있을 때 성립하는 제도다. 그러나 금리가 5% 안팎에 이르는 환경에서는 보증금을 운용해 기대할 수 있는 수익보다 조달 비용이 훨씬 높아졌다. 임대인은 전세보증금으로 이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됐고, 월세로의 전환이 훨씬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제공한다. 임차인도 전세대출 이자 부담이 월세 비용보다 커지면서 전세의 매력은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여기에 전세사기·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사회적 리스크로 확장하면서 전세제도의 심리적 신뢰 기반까지 붕괴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 정책도 전세 중심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다.
이제 전세가격을 안정화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확대되는 월세 시장의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새로운 주거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월세 세액공제 현실화, 저소득층 주거급여 기준 상향, 보증부 월세의 리스크 관리를 위한 보증보험 의무화, 임대인의 재무 건전성 정보 공개 등은 월세 시대에 꼭 필요한 제도적 장치다. 공공임대도 전세형 공급 중심에서 벗어나 월세형·혼합형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서울처럼 주택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한 지역은 청년·신혼부부·고령층 등 월세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지원체계가 시급하다.
전세의 시대는 이미 저물기 시작했고, 월세의 시대는 조용하지만 빠르게 도래하고 있다. 통계의 방향성은 숨겨지지 않는다. 전세가 일시적으로 반등하는 듯 보이는 국면에서도 월세·준월세 지표는 더 빠르게 오르고, 월세통합지수는 전세와의 격차를 지속적으로 벌리고 있다. 여기에 10·15 대책에서 일부 반영된 전세보증금의 DSR 포함 등 제도 변화가 본격화되면 시장은 큰 충격 없이 월세화 전환을 더욱 안정적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미 시작된 구조적 흐름을 인정하고, 새로운 임대차 질서에 맞는 정책·제도·시장 시스템을 얼마나 빠르고 정교하게 준비하느냐다. 주거 안정의 핵심은 과거 전세 시대의 성공 공식을 계속 붙드는 것이 아니라, 월세화 대전환 속에서 국민이 흔들리지 않도록 새로운 기반을 구축하는 데 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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