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건 수 늘고 재판 난도 상승… 법관 90% “하급심 판사 증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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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사건 수 늘고 재판 난도 상승… 법관 90% “하급심 판사 증원 필요”
사정연 ‘법관 근무 여건’ 설문 91% “소송사건 점점 더 어려워져” 시간 부담 원인 ‘사건검토’가 최다 “검토 자료 방대 할수록 난도 높아” 법조계 “대법관만 늘면 법관 이탈 하급심 인력난 심화 불 보듯 뻔해”
법관 10명 중 9명은 하급심인 1·2심에서의 법관 증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관들은 사회·경제·기술의 발전에 따라 관련 사건이 날로 복잡해지며 재판의 난도가 예전보다 크게 높아진 것을 느낀다고 답했다. 법조계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꺼내든 대법관 증원이 현실화할 경우 이러한 1·2심 인력 부족 문제가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사진=뉴시스 31일 사법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재판 실무현황 및 법관 근무 여건에 관한 실증적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91.1%는 ‘재판이 예전과 비교할 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소송사건 난이도가 상승하는 걸 체감한다’고 답했다. 설문조사는 지난해 10∼11월 전국 법관 94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근무 여건의 어려움 등을 사유로 퇴직하는 법관의 수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사법부가 재판 실무 현황과 법관 근무 여건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이번 설문 응답자의 79.5%는 사건 처리를 위해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어떤 업무가 시간적 부담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사건기록 검토’(87%)란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사실심 심리 과정에서 방대한 기록을 파악해 사실관계를 추출하고 쟁점을 정리하며 상호 모순되는 진술이나 증거를 조화시키는 과정 자체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수반한다는 의미다. 당사자 측 변호인들과 검찰이 제출하는 소송 서면과 관련 기록, 공소장 분량도 날로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보고서는 “‘사건기록 검토’는 업무 능률이나 직무의 숙련도와 무관하게 시간적 업무부담을 유발하는 영역으로, 재직기간이 긴 법관들의 경우 체력이나 집중력 약화 등으로 인해 오히려 업무부담이 가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사건기록의 분량이 많아질수록 재판기간은 장기화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러한 가운데 법관 90%는 ‘하급심 법관 증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법관 대다수가 인력 부족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가 적정한 사건 처리를 위해 필요한 추가 업무시간을 기준으로 필요한 법관 증원 규모를 역산해 보니 최소 1000명 이상의 법관이 충원돼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2024년 12월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이 개정됨에 따라 2025∼2029년 법관 총 370명이 순차적으로 증원될 예정이지만, 실질적 업무 부담을 고려하면 이러한 증원 규모는 불충분하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에선 적정한 규모의 하급심 판사 증원 없이 무턱대고 대법관 증원만 이뤄질 경우 법관 업무 가중과 재판 장기화, 우수 법관 이탈 문제가 심화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대법관이 증원되면 하급심에서 근무하던 판사들이 대법관을 보좌하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대거 차출될 것”이라며 “하급심 인력난 심화는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재판연구관은 10∼15년차의 숙련된 법관들이 선발돼 근무하는데, 민주당 안대로 대법관 12명을 증원할 경우 약 120명의 법관들이 재판연구관으로 투입된다. 이는 서울시내 2개 지방법원이 사라지는 것과 동일한 숫자다.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은 최근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 하급심에 대한 신뢰 저하가 상고제도 개편 문제의 핵심이라며 “근본 해결책은 하급심 강화”라고 강조했다.

홍윤지 기자 h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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