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팬이라면 2026년을 맞이하는 게 너무나 설렐 듯하다. 홀수 해였던 2025년에 세계적인 스포츠 대형 이벤트가 그다지 없었던 반면 2026년은 굵직한 대회들이 연이어 열리기 때문이다. 불의 기운과 말의 활력이 결합한 역동적인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맞이하는 한국 스포츠는 세계 무대에서 힘찬 도약을 꿈꾼다. ◆쇼트트랙, 이번에도 ‘금빛 질주’를 부탁해
2026년에 가장 먼저 열리는 스포츠 대형 이벤트는 2월6일부터 22일까지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에서 공동 개최되는 2026 동계올림픽이다. 코르티나담페초는 1956년 7회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곳으로, 70년 만에 다시 열리는 이번 대회는 밀라노와 공동 개최한다. 올림픽에서 두 개의 도시가 공동 개최로 이름을 명명하는 건 동·하계를 통틀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가 처음이다. ‘지속 가능성’과 ‘전통의 조화’를 핵심 주제로 내세우는 이번 동계올림픽에선 새로운 경기장을 짓지 않음으로써 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대회를 모토로 내건다. 개막식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문 축구 클럽인 AC밀란과 인터밀란이 홈구장으로 쓰는 산시로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동계올림픽의 두 축을 이루는 빙상은 밀라노, 설상은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주로 열린다. 아무래도 한국의 ‘금빛 승전보’는 밀라노에서 들려올 가능성이 크다. 2022 베이징에서도 한국 선수단이 따낸 금메달 2개를 모두 책임졌던 쇼트트랙이 이번에도 선봉장으로 나선다. 임종언(노원고), 황대헌(강원도청), 최민정, 김길리(이상 성남시청)의 남녀 에이스들 분전에 따라 한국 선수단의 전체 성적이 달렸다. 그간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최강국의 지위를 놓치지 않았던 한국이지만, 2025∼2026시즌 월드투어에선 캐나다가 남녀 에이스인 윌리엄 단지누와 코트니 사로가 각각 금메달을 6개, 5개 휩쓸며 최강국으로 올라선 만큼 캐나다 선수들과의 맞대결 성패에 따라 메달 색깔이 달라질 전망이다. 쇼트트랙에 비해 금메달 기대감은 작지만, 빙속과 피겨, 컬링, 스노보드 등에서도 깜짝 메달 소식이 들려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4연속 1라운드 탈락의 참사는 없다
동계올림픽의 바통을 이어받는 건 3월5일부터 17일까지 일본, 미국,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다.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주최하는 대회인 만큼,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미국의 에런 저지(뉴욕 양키스) 등 MLB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세계 최고의 야구대회다.
한국에겐 이번 WBC는 설욕의 장이다. 침체됐던 한국 야구가 다시금 국민스포츠로 발돋움한 계기는 2006년 WBC 초대 대회 4강,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 그사이 2008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 획득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2013년, 2017년, 2023년까지 WBC 3∼5회 대회에선 모조리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지난해 1000만 관중, 올해 1200만 관중을 넘어서며 KBO리그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만큼, 이번 WBC에서 선전하며 국제 경쟁력까지 증명한다면 1500만 관중 시대도 바라볼 수 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일본과 호주, 대만, 체코와 함께 C조에 편성됐다. 조 2위 안에 들어야만 2라운드(8강)에 오를 수 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WBC 최다 우승국(2006, 2009, 2023)인 일본이 오타니를 앞세워 막강 전력을 뽐내는 만큼,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을 모두 잡아내야만 4연속 1라운드 탈락을 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2023 WBC ‘도쿄 참사’ 이후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있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한화)이 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이정후, 김하성, 김혜성의 ‘메이저리거 3총사’와 안현민, 노시환, 김도영 등 KBO리그 젊은 야수들을 앞세워 ‘AGAIN 2006, 2009’에 도전한다.
◆손흥민의 마지막 월드컵, 그 결말은?
초여름이 찾아오면 ‘붉은 악마’의 응원 물결이 한반도를 뒤덮을 예정이다. 단일 종목 최대 스포츠 축제인 2026 북중미 월드컵이 6월11일부터 7월19일까지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에서 열린다. 북중미 3개국이 공동 개최하는 이번 월드컵은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출전 국가가 확대돼 전 세계 100억명 이상이 시청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도 11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 축구의 상징이자 주장인 손흥민(로스앤젤레스FC)이 전성기 기량으로 뛰는 마지막 월드컵으로도 큰 주목을 받는다. 손흥민은 이번 월드컵을 100% 컨디션으로 맞이하기 위해 지난해 8월 10년간 뛰어온 잉글랜드를 떠나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로 무대를 옮겼을 정도다. 손흥민과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핵심 3인방이 이끄는 한국 축구는 16강 이상의 성적을 기대한다.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포트2에 속해 조추첨을 맞이한 한국은 개최국인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유럽 플레이오프 D(덴마크, 체코, 아일랜드, 북마케도니아 中 한 팀)와 A조에 편성됐다. FIFA 랭킹 1∼9위의 최강국들을 피했고, 포트3에서 세계랭킹이 가장 낮은 남아공과 한 조에 묶이면서 수월한 조 편성이라는 평가다. 다만 조별예선 1, 2차전을 치를 과달라하라의 해발고도가 1600m에 이르는 만큼, 고산지대에서의 적응력이 큰 변수다. ‘홍명보호’는 3월 유럽 평가전을 통해 최종 엔트리를 확정지을 예정이다.
◆일본에게 두 번 연속 빼앗긴 종합 2위를 탈환하라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즈음엔 ‘48억 아시아인의 축제’ 2026 아시안게임이 일본 아이치현과 현청 소재지인 나고야에서 9월19일부터 10월4일까지 열린다. 1958년 도쿄, 1994년 히로시마에 이어 세 번째로 일본에서 개최되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선 41개 종목에서 560개의 금메달을 놓고 경쟁한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도입돼 관심을 모았던 e스포츠가 이번에도 열리며 종합격투기(MMA)도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한국 선수단은 종합 2위 탈환에 도전한다. 1998 방콕부터 2014 인천까지 중국에 이어 종합 2위를 놓치지 않았던 한국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에 이어 2022 항저우에서도 일본에 종합 2위를 빼앗겼다. 이재명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는 만큼 남북 단일팀 구성과 개회식 공동입장 여부도 관심을 모은다. 한국과 북한은 문재인정부 시절에 열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같은 해 자카르타·팔렘방 하계 아시안게임 때 일부 종목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 바 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