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찰스 3세 영국 국왕. 사진은 지난 2025년 9월 영국을 국빈 방문한 트럼프를 위해 찰스 3세가 베푼 국빈 만찬 때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812년 미국은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 영국에서 독립하고 나서 30년도 채 안 지난 시점이다. 당시 프랑스 연안 봉쇄에 나선 영국 해군이 유럽으로 향하는 미국 선박들을 툭하면 검문검색하는 등 교역을 방해한 것이 미·영 전쟁의 원인이었다. 초반에는 미군이 영국령 캐나다 일부를 점령하는 등 우세한 듯했다. 하지만 영국 본토에서 캐나다로 전개된 증원군이 참전하며 양상은 달라졌다. 영국군은 국경을 넘어 미 수도 워싱턴까지 진격한 뒤 백악관, 의회 의사당 등에 불을 질렀다. 이 전쟁은 결국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1814년 양국 간의 조약 체결로 마무리됐으나, 적국에 나라 심장부를 빼앗긴 미국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미·영이 오늘날과 같은 ‘특수 관계’로 발전한 것은 제1·2차 세계대전에서 모두 같은 편이 되어 싸웠기 때문이다. 사실 1차대전 당시만 해도 영국에겐 미국보다 프랑스가 훨씬 더 중요한 파트너였다. 하지만 2차대전 발발 직후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힘없이 무너지며 영국인의 세계관에 근본적 변화가 생겼다. 프랑스는 더는 믿음직한 동맹이 아니었다. 이젠 대서양 너머 미국과의 친선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어머니가 미국인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앞장섰다. 그는 영국 식민지에서 출발해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들을 한데 묶는 ‘영어권 국가’란 개념에 천착했다. 미국인들을 향해 “영어권 국가를 대표하는 영국·미국이 힘을 합쳐 세계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2차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나치 독일과 싸우는 연합국 국민을 독려하기 위해 라디오 연설을 하고 있다. 미국인 어머니를 둔 처칠은 영·미 양국의 ‘특수 관계’ 수립에 크게 기여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올해는 미국 독립 250주년이다. 지난 1976년 독립 200주년이라고 해서 한 해 동안 미국 전체가 떠들썩했는데, 그 뒤 50년 만에 또 중요한 정주년(整週年·5년 또는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을 맞은 것이다. 웅장한 의식을 즐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답게 초대형 이벤트가 1년 내내 이어질 예정이다. 2025년 영국을 국빈 방문해 융숭한 대접을 받은 트럼프가 이번엔 답례로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미국 국빈 방문을 주선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찰스 3세의 방미 일정과 관련해 이미 미·영 양국 정부 간에 치밀한 조율이 이뤄지는 중이라고 한다. 영국과 싸워 독립을 쟁취한 미국의 건국 250주년 축하 손님이 한때 미국을 식민지로 지배한 영국 국왕이라니, 격세지감이 든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