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법 자체가 박자인 말들의 질주. 한국마사회 제공 말의 보법은 그 자체로 박자가 되곤 했다. 평보는 네 발이 각각 땅을 짚는 4박, 속보는 대각선 두 발이 맞물리는 2박, 구보는 넘실대는 3박에 가깝다. 습보는 긴박한 4박의 연타 끝에 네 발이 모두 지면을 떠나는 찰나, 그 사이로 짧은 정적의 공간이 끼어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박자가 아니라 중력의 감각이다. 땅을 디딜 때 눌림, 공중으로 솟을 때의 부유. 작곡가들은 이 눌림과 비움의 교대에서 긴장의 원형을 발견했다. 클래식 음악에서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곡은 ‘윌리엄 텔’ 서곡 피날레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금관 팡파르와 함께 현악기군이 쏟아내는 리듬은 말발굽이 지면을 박차는 물리적 타격음을 음향으로 재현한다. 주페의 ‘경기병’ 서곡 또한 화려한 금관악기의 포효와 현악기의 우아한 질주를 통해, 가벼운 무장으로 전장을 누비는 기병대의 위풍당당한 기상을 그려낸다. 여기서는 말의 속도감이 곧 승리의 확신이다.
반면,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말은 이승과 저승, 현실과 신화를 오가는 영매였다.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에서 피아노가 연주하는 끊임없는 셋잇단음표는 어둠 속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인 동시에, 죽음의 공포에 쫓기는 아버지와 아이의 급박한 심장박동이다. 리듬이 멈추는 순간 아이의 생명도 함께 끊어지는데, 이때 속도는 물리적 빠르기가 아니라 공포에 질린 내면이 왜곡하는 심리적 기제로 작동한다.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에 이르면 말은 중력을 벗어난다. 강력한 추진력을 지닌 리듬 위에서 신화 속 말들은 하늘을 비행하듯 질주하고, 금관악기의 거대한 라이트모티프와 현악기의 상승하는 제스처 속에서 전장의 공기를 가르며 숭고한 권능을 펼쳐낸다.
말이 주는 감각이 언제나 비장한 것만은 아니다. 비발디 ‘사계’ 중 ‘가을’ 3악장은 사냥마(馬)를 연상케 하는 경쾌하게 튀어 오르는 리듬과 쫓기는 짐승의 부산한 움직임을 동시에 포착한다. 겨울로 접어들면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11월 ‘트로이카’가 펼쳐진다. 이 곡에서 말발굽의 타격은 눈 속에 파묻혀 둔탁해지고, 그 빈자리를 대신한 피아노의 투명한 고음과 반복되는 선율이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확산된다.
이상권 음악평론가 다만 악보 위의 말발굽은 끝내 모사에 그친다. 살아있는 말이 땅을 박차는 순간의 육중한 공명은, 수백 킬로그램의 몸이 만들어내는 진동과 먼지, 김처럼 피어오르는 숨결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 비로소 완성된다. 홍콩에서는 새해마다 경마장에 모여 첫 질주를 지켜보며 한 해의 복을 비는 ‘러키 스타트’ 행사가 열린다. 우리에게도 그 기회가 있다. 경주가 열리는 날에 렛츠런파크를 방문해 결승선 가까이에 서 있어 보자. 트랙을 가르는 말발굽의 박동이 공기보다 먼저 발바닥을 두드리고, 그 진동이 흉곽 깊숙이 스며든다. 악보 위에서 개념으로 정리되던 리듬이 다시 물성을 되찾는 순간이다. 어쩌면 당신의 심장은 이미 그 박자를 잊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병오년, 모두가 그 뜨거운 본능을 타고 거침없는 기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상권 음악평론가